오준 경희대 교수 前 駐유엔 대사

연휴가 끝나고 일상에 복귀하면 언제나 할 일이 많다. 그간 국내 정치에 함몰돼 관심권에서 좀 멀어져 있던 외교안보 분야는 더욱 그렇다. 미·북 비핵화 협상 재개, 방위비 분담 등 한·미 동맹 현안, 한·일 갈등의 해법 모색과 같이 시급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외국에서 참석한 한반도 관련 회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미국은 행정부가 바뀌면 이란과의 합의처럼 과거에 맺었던 약속을 깨는데, 만일 미·북 간 합의가 되더라도 북한으로서는 비핵화만 하고 보상은 못 받는 일이 안 생길지 어떻게 믿죠?” 그래서 사실은 과거 9·19 공동성명처럼 양측이 단계적으로 취할 조치들을 포괄적으로 합의하는 패키지딜이 가장 바람직하다. 핵 폐기나 제재 해제 같은 궁극적 목표는 맨 끝에 배치해 놓고 상응 조치를 해 나가다가 만약 한 쪽이 안 지키면 상대방도 합의 이행을 중지하면 된다.

그런데도 현 상황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패키지딜을 미·북이 추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양측 모두 정치적인 이유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또 한 번의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이 북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괄적 합의보다는 북한이 핵과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않으면서 일보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해 주면 충분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입장에서는 확실한 핵 포기를 약속하는 패키지딜보다는 우선 과도적 비핵화 조치로 대북 제재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정치적 쇼와 같은 성격의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완전한 해결이 없이도 3차 미·북 정상회담을 가능하게 해줄 ‘정치적 고려’는 똑같은 이유로 회담을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결렬된 것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북한 문제 해결을 치적으로 활용하려면 하노이와 같은 결과가 반복돼선 안 된다. 북한이 영변을 포기하고 제재 해제를 받으려 했는데 미국 입장에서 수용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직접 설명한 사람이 트럼프 자신이다. 따라서 더욱 진전된 비핵화 없이 정상회담이 다시 열린다면 그에게는 오히려 악재가 될 것이다. 김 위원장으로서도 의미 있는 제재 해제 없이 ‘영변 플러스 알파’에 동의해 주는 것은 북한 대내용으로라도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 때문에 결국 전문가들이 세밀한 협상으로 서로 물고 물리는 상호 조치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생략하고 정치적 성과만을 추구하는 접근법은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

사실 한국 입장에서는 미·북 비핵화 협상이 진전을 이루는 것도 좋지만, 북한이 더 이상의 도발을 하지 않고 국가 안보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 동맹에 균열이 없음을 재확인해야 한다. 최근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방위비 분담 문제 등이 동맹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고 극복 가능한 문제들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다음 주 유엔총회 때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이처럼 동맹을 다지기에 좋은 기회다. 미국이 불안하게 여기는 부분을 정상 간 얼굴을 대할 때 확신하게 해줘야, 우리가 필요한 협조도 받아낼 수 있다. 국가적 현안이 많은 가을을 맞아 외교안보 분야라도 좋은 소식으로 새로운 시즌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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