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여(1921∼2011)
세무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북에 두고 생이별한 가족이 그리워 소풍 삼아 자주 낚싯대를 메셨다. 서울 금호동에 살던 우리 가족은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를 건너 배 밭(지금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둑을 내려와 ‘견지낚시’를 따라갔는데 피라미, 끄리, 눈치 등 지금은 보기 힘든 어종을 꽤 많이 잡아 끓여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버지는 효자이셨지만, 38선 넘어 분단의 아린 아픔에 눈물로나마 백리부미의 세월을 보내셨다. 추석날 외할머니 성묘 행사 때는 항상 나중에 따로 내려오시며 붉게 물든 눈가 눈물 흔적을 감추시곤 했다.
그리고 공무원의 아내로 평생을 보내신 ‘어머니’ 金字, 順字, 愛字. 참 지독히도 생활력 강하시고 예쁘고 손재주 많으셨던 어머니, 그 억척스러운 생활력은 어디서 왔을까? 폐허의 도시에서 자식 넷을 어떻게 다 건사하셨을까?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먼저 가신 그해, 망연자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곡기를 마다하신 아버지는 암울했던 시기 동지이자 동반자였던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가셨다. 아버지의 애창곡은 ‘눈물 젖은 두만강’, 나중에 그곳에 가게 되면 부모님의 애창곡도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으려나?
아들 김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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