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비행시간이 8시간으로 줄어들었을 즈음, 나는 지금 비행기에서 글을 쓰고 있다. 식사 서비스가 끝나고 조명이 어두워지면 여기저기서 들리던 목소리가 잦아들고, 어느덧 비행기 소음만 감도는 고요한 시간이 찾아온다.

일반적인 고요함은 아니지만, 비행기 소음은 어느덧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공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또 누군가는 나처럼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도 한다.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그 시간을 흘려보내거나 붙잡아두고 있다.

요즘은 와이파이 서비스를 하는 항공사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대한항공 기내에서는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 외항사를 이용할 때 가끔 와이파이를 써본 적이 있지만, 기내에서 일을 하는 나로서는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사실 아직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지금 상태가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어느 때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유일한 공간이 비행기 안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기도 하고,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책을 읽는 시간도 그 몰입도가 상상 이상이다. 평소에는 몇 페이지 읽었다 싶으면 톡 알림이 울리고,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찾아보다가 다른 길로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비행기에서는 그 모든 방해 요소들이 없으니 한 권을 읽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여행지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는 데도 비행기만큼 빠르게 일 처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다른 어떤 사진과의 비교도 아닌 나만의 색감과 스타일을 찾아 보정을 하고, 도착 이후 그 작업물들을 보면 마치 새벽에 쓴 글을 다음 날 읽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만큼 고요함 속에서의 몰입은 평소와는 다른 결과들을 가져온다. 집중과 몰입이 주는 결과는 그렇지 않았을 때의 몇백 배에 달한다. 나는 비행기에서 읽었던 책은 그 순간과 내용까지 명료하게 기억나는 것이 많다.

가끔은 그날 비행기 티켓을 책갈피처럼 꽂아두고, 메모도 해두면서 그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려고 한다. 긴 비행시간이 걱정인 분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떤 일에 몰입해보는 알찬 기회로 채우라고 말이다. 그 한 번의 경험은, 분명 다음 기회를 고대하게 되는 좋은 시작이 될 것이 분명하다.

대한항공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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