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과 각 세운 검찰총장들
- “중수부 없애려면 내 목 쳐라”
송광수, 盧 대선자금 들추고
안희정·이광재 등 실세 수사
강직한 리더십으로 최고 평가
- “국민, 檢 외압굴복 원치않아”
김종빈, 강정구 구속 결정하자
천정배 법무, 수사 지휘권 발동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에 사표
-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윤석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文정권서도 職걸고 조국 수사
후배들, 배짱 리더십 전폭지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해야 하는 검찰총장은 항상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친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총장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원칙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언급하는 원칙은 ‘증거에 따른 수사’다. 현 정권 핵심 실세도 증거가 범죄 정황과 혐의를 가리키면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를 방해할 때는 법무부 장관은 물론 대통령에 대한 항명과 사표를 불사한다. 검사들은 검찰총장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정치적 중립성’과 ‘외압에 맞서는 독립성’을 꼽는다.
한 전직 대검 차장검사는 검찰총장의 리더십에 대해 “(현 정권에 대해)수사를 잘하면 여당에서 가만두지 않고, 못하면 야당이나 국민이 가만두지 않는다. 검찰총장 자리는 정치적으로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총장이 원칙을 지키다가 ‘변’을 당하면 동정의 여지가 있지만, 원칙을 지키지 않고 변을 당하면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한 전직 검사장은 “검찰총장의 리더십은 ‘사무라이 정신’과 비슷한 데가 있다. 원칙에 입각한 수사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을 시 총장은 사무라이가 할복하는 심정으로 조직을 지켜야 하고, 총장이 결단하지 못할 시에는 후배 검사들이 총장에게 사표제출을 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현직 검사장은 “검찰총장은 검사의 상전은 권력도 기업도 정치인도 아닌 오로지 ‘법과 국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송광수 “중수부를 없애려거든 먼저 내 목을 쳐라” = 노무현 정부 초대 검찰총수였던 송광수 검찰총장은 지난 2004년 정권이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를 추진하자 극렬하게 저항했다. 검찰 내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 결과, 당시 한나라당 대선자금 액수의 10분의 1을 넘어서자 청와대가 법무부를 통해 대검 중수부 폐지에 나선 것으로 보고 반발했다. 당시 대선자금 수사의 주역은 대검 중수부였다. 대통령 측근들은 검찰이 공명심에 무리한 수사를 한다며 중수부를 폐지하자고 주장했고, 법무부도 폐지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강금실 변호사였다. 송 총장은 임기 2년을 모두 채웠고 대검 중수부는 이명박 정부 때 폐지됐다.
송 전 총장은 퇴임 후인 2007년 서울의 한 대학에서 특강하며 “당시 언론에서는 수사 중에 대통령이 ‘내가 한나라당 쓴 것의 10분의 1보다 더 썼으면 그만두겠다’고 말한 것에 주목하고, 검찰이 10분의 1을 안 넘기려고 대통령 측근수사는 안 하고 야당만 수사한다고 했다”며 “그런데 (검찰에서) 10분의 2, 3을 찾았더니, 대통령 측근들은 검찰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며 손을 봐야 한다고 했다”고 고백했다. 송 전 총장은 2003년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에 대한 법무부의 불구속 수사 지휘에 대해서도 사표를 내겠다고 버텨 결국 구속수사를 관철했다. 당시 정점식 공안부 평검사까지 사표를 내겠다고 버티는 등 송 전 총장 휘하 검찰은 한몸이 돼 저항했다. 송 전 총장은 다수의 현직 검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역대 최고의 총장’에 단골로 오르는 인사 중 한 명이다. 법조계 원로들도 “난국을 타개하는 역량과 경륜이 있고 지혜롭고 리더십 있는 총수”라고 평가한다. 송 전 총장은 서울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1977년 검찰 임관 이후 검찰과 법무부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03년 3월 김각영 검찰총장이 노무현 정부와의 갈등으로 물러나자 후임으로 임명됐다. 송 전 총장은 인사청문회를 받은 최초의 검찰총장이기도 하다. 한 전직 검사장은 “송 전 총장은 중수부장 안대희 등 대선 문제 검찰 수사팀을 통해 안희정, 이광재 등 정권 실세까지 성역 없이 수사해 검찰 안팎에서 인기를 얻었다”고 밝혔다.
◇김종빈 “수사지휘권 행사는 검찰의 정치 중립 훼손”=김종빈 전 총장은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라고 주장한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하려는 수사팀에 대해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 수사 지휘권’을 발동하자 항의의 뜻에서 임기를 1년 넘게 남겨둔 상황에서 사퇴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부는 강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수사했다. 황교안 현 자유한국당 대표가 그 시절 중앙지검 2차장검사로서 수사 지휘부에 있었다. 수사팀이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올리자 김 전 총장은 이를 그대로 법무부에 전달하며 영장 청구 방침을 알렸다. 그러자 당시 천 장관이 ‘인권 보호 측면에서 불구속 수사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정면충돌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얼마 뒤 천 장관은 ‘수사지휘’라는 제목의 공문서를 결재한 뒤 이를 대검에 하달하고 언론에도 공개했다. 검찰 수장으로서 위신에 흠집이 났다고 여긴 김 전 총장은 사표를 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검찰청법 8조에 의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유일한 사례다. 그 전엔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두고 ‘사실상 사문화한 법률’이란 평가까지 있었다.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법무부 장관의 검찰 지휘·감독권을 규정했다.
김 전 총장은 퇴임사에서 “수사지휘권 행사는 검찰 정치 중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매우 충격적인 일로 그간 검찰이 쌓아온 정치 중립 꿈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며 “국민은 정치가 수사에 개입하고, 권력과 강자의 외압에 힘없이 굴복하는 검찰을 바라지 않는다”고 정권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김 전 총장의 대쪽같은 리더십은 일선에서 수사팀을 이끄는 과정에서도 엿보였다. 김 전 총장은 1978년부터 27년 동안 검찰에 몸담으며 기획과 수사 분야의 전문가라는 평을 들었다. 그는 1990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유전자 감식 기법을 국내 최초로 수사에 도입하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2년 호남 출신임에도 동교동계 비리를 밝혀내는 수사를 지휘해 민주당 동교동계로부터 원성을 듣기도 했다. 또한 ‘이용호 게이트’ 수사에서도 ‘칼날 검사’의 위용을 보이기도 했다. 대검 차장 시절에는 송 전 총장과 대선자금 수사를 함께했던 인물이다. 후배 검사들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소신이 확고했던 총장”으로 높게 평가한다.
◇윤석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지난달 말부터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해 제기된 의혹과 관련해 주변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던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부장 고형곤)는 23일 조 장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을 인사·행정적으로 관할하는 법무부의 현직 수장이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한 것도 초유의 일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윤 총장의 ‘배짱 리더십’이 없었다면 조 장관에게 혐의 정황이 있더라도 현재와 같은 원칙에 입각한 수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윤 총장이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13년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였다.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이었던 그는 전국에 생중계되는 국정감사장에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심각했다”고 말했다. 외압의 주체로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지목하기도 했다. 그는 “(국정원 댓글 사건은) 선거 사범 사상 유례없는 중대 범죄”라며 박근혜 정권 1년 차에 정권의 정당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말을 생중계 현장에서 가감 없이 했다. 일개 수사팀장인 그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굽히지 않았다. 야당인 당시 민주당은 ‘의인(義人)’이라고 평가했다. 그를 추켜세운 세력이 집권하자 초고속으로 검찰총장이 됐다. 윤 총장이 수장에 오른 직후 이어진 검찰 인사에서 현 정권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한직으로 밀려났다며 사표를 냈다. 윤 총장에 대한 실망과 서운함을 호소하는 검사가 늘어났다. 조직에 실망한 검사들이 대거 줄사표를 내는 등 후폭풍이 거셌으나 조 장관에 대한 수사 이후 금 갔던 윤 총장의 리더십이 복구됐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검사들은 “‘센놈’을 수사할 때 검사들은 살아있음을 느낀다”며 지지를 표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검찰 수사를 받던 조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특수부 축소를 지시했다. 사실상 윤 총장에 대한 저격이다. 검찰개혁을 주도한 ‘검찰개혁 추진 지원단’을 만들었다. 법무부 고위 간부 2명이 대검 간부들에게 조 장관 일가 수사와 관련해 윤 총장을 배제한 수사팀을 만들자고 제안한 사실도 드러났다. 조 장관과 법무부가 연이어 윤 총장을 압박하고 나섰지만, 수사 의지를 꺾지 않았다. 최근 윤 총장은 원로 검찰 인사와의 통화에서 “직(職)을 걸고 이번 수사를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윤 총장에 대한 후배 검사들의 지지는 어느 때보다 전폭적이다. 윤 총장은 검찰의 조 장관 수사가 ‘검찰개혁을 방해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헌법 정신에 입각한 수사”라고 밝혔다.
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
■ 윤석열 ‘사시 9수’ 원인 & 인연 Best 5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법고시 ‘9수’를 하고도 검찰총장에 오른 유일한 검사다. 해박한 법률지식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떨어져 9수 원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윤 총장은 서울대 법학과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이후 2차에서 9년간 낙방하다가 1991년 33회 사법시험의 최종 관문을 넘었다. 연수원 23기 동기인 이정렬 전 부장판사는 과거 방송프로그램에서 “윤석열은 사시 합격은 늦었지만 모르는 부분은 완벽히 이해할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이라고 밝혔다. 윤 총장의 9수는 ‘사람들’ 때문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서울대 인근에서 후배들에게 과외 선생 역할을 했을 정도로 교류를 중요시했고 친화력도 상당했다. 윤 총장의 일화 하나. 사시 낭인 시절 S 전자에 다니는 친구의 퇴근을 기다려 친구를 포함한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자주 갖다 보니 나중에는 사람들이 같은 회사에 다니는 줄 알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나이 : 59세
학력 : 충암고 졸업 / 서울대 법학과 졸업
이력 : 사법연수원 23기 / 1994년 대구지검 검사 / 2007년 대검 연구관 / 2012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 / 2019년 검찰총장
이명재 전 검찰총장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 민정특보를 지냈던 이명재 전 검찰총장은 윤석열 총장에겐 멘토다.
2002년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사에서 검사로 다시 임관된 윤 총장은 “나를 검찰로 복귀시켜준 이 전 총장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장과 윤 총장은 태평양에서 같이 근무했다.
박영수 특검
윤석열 총장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2005년 현대자동차 수사 때도 선배들의 지원을 받았다. 대검 중수부장으로 있던 박영수 특검과의 관계도 이때 형성됐다. 국정원 댓글 사건 이후 한직으로 밀려났다가 박 특검이 2016년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특검팀의 수사팀장으로 임명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채동욱 전 총장과의 인연은 2006년 대검 중수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법대 선후배인 이들은 현대차와 론스타를 수사했다. 박영수 중수부장 밑에 채동욱 수사기획관이 있었고, 윤 총장은 부부장검사였다. 채 총장이 취임하자마자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윤 총장을 팀장으로 지명했다.
윤대진 수원지검장
대윤과 소윤으로 불리는 윤석열 총장과 윤대진 지검장은 서울대 동문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친해졌다. 둘 다 늦게 합격한 편이라 시험 준비 기간이 길었다. 지난 7월 윤 총장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윤 지검장의 형인 윤우진 당시 용산세무서장의 뇌물 의혹 내사 때 이남석 변호사를 소개해줬는지가 쟁점이 됐다.
한동훈 대검 반부패부장
한동훈 검사장은 윤석열 총장이 가장 신뢰하는 후배로 꼽힌다. 대검 중수부 시절부터 윤 총장과 함께해 왔고, 국정농단 박영수 특검팀에도 함께 파견됐던 한 검사장은 2017년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 되자 3차장검사로 발탁됐다. 박근혜 정부 특수활동비 의혹,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횡령 의혹 등 적폐수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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