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내놓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은 연구·개발(R&D)에 중점을 뒀지 화학물질 등 산업현장의 물품에 대한 규제 혁파 대책은 없어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환경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은 선진국보다 과도하게 지속적으로 강화돼 기업 경영을 옥죄고 있다.

화학물질 규제 강도를 보면 한국-유럽연합(EU)-미국-일본 순으로 한국이 가장 강하다. 일본과 미국의 경우 화학물질 신고대상을 신규 화학물질로 제한한 반면 한국과 EU는 신규 및 기존 물질에 모두 적용하고 있다. 규제 강도가 EU보다 더 강한 우리나라 화평법과 화관법은 한·일 소재·부품산업의 격차를 부른다.

신규 화학물질의 경우 EU는 1t 이상 유통할 때에만 등록 의무를 주지만 한국은 100㎏ 이상이면 모두 적용된다. 등록해야 할 물질도 500여 개에서 7000여 개로 14배로 급증했다.

환경부의 화학물질 유해성 입증책임을 위한 절차에 투자되는 비용을 보면 기업들은 화평법에 따라 연구·개발용 등록면제확인 서류 또는 15~47개 시험 자료를 준비하고 1개 물질을 등록하는 데 최소 200만 원에서 최대 1억2100만 원(평균 1200만 원)을 들여야 한다. 화평법을 지키려면 기업이 직접 화학물질 유해성 입증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용 부담이 신소재 개발을 포기하는 사례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대폭 강화한 안전기준을 적용해 개정한 화관법은 강화된 시설기준을 요구하고 있어 시설개선이 불가피한 강력한 규제다. 기존 시설에 대한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올해 말까지 기업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화학물질 관리대상도 우리나라가 훨씬 많다. 일본의 화학물질 제조 등의 심사 및 규제에 관한 법률(화심법)은 562종의 화학물질을 관리하지만 한국 화관법은 1940종 이상을 관리하는 등 관리대상에서 약 3.5배 차이가 난다.

화평법과 화관법의 유해물질 정의가 달라 기업이 혼란스러운 만큼 관련 법률도 하나로 재정비해야 한다. 화평법에는 단일 화학물질을 신고하도록 규정했지만, 화관법에서는 혼합물질까지 모두 신고하도록 했다. 화평법에 규정된 ‘제조’에 단순 혼합은 포함되지 않는 데 비해 화관법에서는 단순 혼합도 신고물질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화평법, 화관법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등 기존 다른 법규와 중복되고 각기 다른 규제에 관리 부처도 달라 과잉 규제가 되고 있다. 신고대상인 화학물질은 기존에 사용했던 물질이나 새로 사용하려는 물질이 모두 해당되며, 등록절차도 법률마다 달라 기업들은 관계 부처(환경부, 고용노동부)에 각종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일본(화심법)과 미국(TSCA)이 새로 사용하려는 화학물질에 대해서만 신고를 의무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

융합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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