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의 싸움 / 김재인 지음 / 동아시아

탈레스·니체·칸트·푸코 등
철학사 명장면 탄생시킨 16명
主저서·개념 비판적으로 설명

‘왜’라고 묻고 함께 생각한뒤
근거 없으면 탄핵하는게 철학
자유향한 사유의 전쟁 이끌어


먼저, 필자가 이 책을 평하는 데 상당히 부적절한 측면이 있음을 고백해 두고 싶다. 대학 시절 매주 세미나를 열어 몇 해를 같이 니체, 푸코, 들뢰즈 등을 공부한 이래 서른 해 넘게 저자와 이런저런 우정으로 얽혀 왔기에 공유하는 익숙한 이해 편향과 대담한 애착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의 싸움이 일어난 철학의 멋진 장면들을, 즉 철학의 도정에서 일어난 사고의 도약 현장을 신중하게 골라서 평이하고 명료한 언어로 해설한 이 책에는 필자의 필연적 싸고돎을 무시해도 좋을 만한 충분한 매력이 있다. 이 책과 함께 우리가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철학이라는 이름의 어떤 정보나 지식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한 철학자의 사고를 투쟁 속에서 뺏어오는 일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생각에는 “좋은 생각이 있고 나쁜 생각”이 있다. 좋은 생각은 “가치 있는 생각, 생각을 자극하는 생각, 삶을 성장시키는 생각”이고, 나쁜 생각은 “삶을 깎아내리고 힘 빠지게 만들고 주눅 들게 하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철학자는 모두 열여섯 명이다. 탈레스와 그 제자 아낙시만드로스, 니체, 베이컨, 데카르트, 흄, 칸트,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베르그손,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스피노자, 밀, 푸코……. 목차에는 없지만 이 모두를 감싸는 철학자 질 들뢰즈가 있다. 들뢰즈는 이 책 전반에 등장해 우리를 이들의 사유 깊은 곳으로 안내한다.

열일곱 철학자는 우리한테 ‘좋은 생각’을 하는 법을 보여주는 능숙한 길잡이 같다. 무엇보다 좋은 생각은 우리를 주인으로 만든다. “스스로 검토하고 걸러내어 받아들인 것이 아닌 그 어떤 규칙”도 보류하라고 안내한다. 그러려면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이전의 또는 타인의 모든 생각을 “따져 묻는 일”을 해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탈레스는 보통명사로 생각하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다. 탈레스 이전의 인물인 호메로스는 신화의 언어로, 즉 고유명사로 사고했다. 풍랑이 거세게 일면 포세이돈이 화를 내고, 연인 앞에서 심장이 뛰면 에로스가 화살을 날렸다는 식이다. 신의 변덕에는 당연히 이유가 없다. 따라서 뮈토스적 사고에는 ‘왜?’라는 질문이 불가능하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보통명사로 사유함으로써, “따져 묻는 일”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정한 것”을 내세워 스승 탈레스한테 대들었고, ‘꼰대’가 아니었던 탈레스는 이를 허용함으로써 “따져 묻는 활동”, 즉 비판을 영속하도록 만들었다.

철학은 “왜”라고 물어보고, 근거가 있으면 같이 생각하고 근거가 없으면 탄핵하는 로고스의 활동이다. 스스로도 어떤 주장을 세울 때마다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이처럼 생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더 용감하고 솔직하고 겸손”해진다는 뜻이고, “더 짓궂고 장난스럽고 무례”해진다는 뜻이며, “깐깐하고 가혹”해진다는 뜻이다. ‘철학한다’는 것은 생각을 둘러싸고 싸운다는 말이고, 이 책에 나오는 철학자들은 일종의 전승기념비를 남긴 이들이다.

“앎의 싸움”은 인식론에, “있음의 싸움”은 존재론에, “삶의 싸움”은 윤리학에 대응하는 등 이 책은 전통적 입문서 체제를 따르지만, 저자와 함께 읽기를 단련하는 훈련에 돌입하는 혁신적 방법을 사용한다. 한 철학자의 중심 저서가 호명되고, 싸움의 최전선에 놓인 핵심 구절이 제시된다. 한 철학자의 삶을 살펴 그들이 싸우려 했던 구체적 문제를 함께 확인한 후, 곧바로 텍스트 속으로 뛰어든다. 한 줄 한 줄 읽고 해설하면서, 철학자가 문제 해결을 위해 도출한 개념을 정립하고, 그 의미와 한계를 따져 묻는다. 한 철학자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고, 저자의 싸움에 동참하는 것이며, 독자의 새로운 싸움을 일으키는 것이다.

니체의 기념비를 살펴보자. 리그베다를 빌려와서 니체는 “아직 빛을 낸 적이 없는 아주 많은 아침놀이 있다”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니체에 따르면, 철학의 “의미나 가치는 삶에서 자리매김 되는 것”이지 “의미나 가치가 원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의 모든 종교와 도덕은 이 엄연한 사실을 숨겨왔다. 또한 우리는 유한한 존재들이다. 우리 삶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 의미도, 목적도 없이 태어난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한 채 지쳐서 쓰러지는 숙명적 허무와 절망이 우리 삶의 진짜 얼굴이다. 하지만 결론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 정신의 비행자”인 철학자는 바다 밑에서도 탐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의미와 가치가 모조리 무너진 허무한 밤 너머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의 아침놀이 생겨날지 도대체 어떻게 누가 장담한단 말인가. 결국에는 “가장 우아하고 고귀한 몸짓”을 잃어버릴지라도, “다른 새들은 더 멀리 날아갈 것이다.” 삶이란, 육상선수가 경주하듯, 한 발이라도 더 멀리, 더 높이, 더 빨리 가는 경쟁이다. 때때로의 측정은 있어도 도달해야 할 궁극의 목표는 없다. 똑같은 인생을 한 차례 더 살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자신이 참여하기로 한 경기를 운명을 다해 사랑하는 것일 뿐이다.

철학이라고 특별히 다를 리 없다. 지쳐서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까지, 자유를 위한 탐구가 멈추는 일은 없다. 세계의 전적인 허무 속에서도 탐구는 계속된다. 현대의 철학자 푸코는 말한다. “올바르게 처신하고 자유를 훌륭히 실천하기 위해 희랍인은 자신에게 전념하고 자기를 배려해야 했다. 자신을 알기 위해, 자신을 형성하고 또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을 몰아세울 위협을 지닌 충동들을 자신 안에서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나쁜 생각은 우리를 싸구려로 만들고, 마침내 노예로 전락시킨다. 하지만 주인으로 자유를 실행하려면 막 나가는 게 아니라 자유를 위한 어떤 조건을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자유의 조건마저 따져 묻는 것, 이것이 철학이다. 철학만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다. 이 책이 우리를 사유의 전사로 만든다. 408쪽, 1만8000원.

장은수 이감문해력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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