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통기업은 2018년 매출액 616조 원을 기록한 월마트다. 또 다른 유통기업 아마존은, 2016년 매출액이 148조 원이었지만 2018년엔 280조 원으로 성장했다. 한국 기업들엔 꿈 같은 숫자지만, 월마트와 아마존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전혀 다른 데 있다. 천문학적인 규모에도 불구하고 월마트와 아마존은, 한국 기업들이 겪고 있는 각종 규제에서 너무 자유롭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 기업은 특정 지역에 출점(出店)하겠다고 하면 해당 지자체로부터 다양한 인센티브를 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국회에서 가진 ‘을지로 민생 현안회의’에서 복합쇼핑몰 출점을 규제하기 위해 ‘지구단위계획 수립 지침’을 개정키로 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계획을 세울 때 특정 구역에 대형 유통점이 들어오는 걸 원천 봉쇄하려는 계획이다. 야당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반대하니까, 훈령을 고치는 편법으로 지자체에 복합쇼핑몰이나 대형 마트 출점을 제한할 권한을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명분은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것이지만, 정작 골목상권이 무너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장기적인 내수침체와 온라인 쇼핑의 급속한 성장이다.
한국 경제는 2017년 9월을 정점으로 지금까지 24개월째 악화 일로이다. 특히, 자영업자들에게는 지난 2분기가 최근 10년 동안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직원 없이 사업주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 월평균 사업소득이 약 228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12.5%나 줄었다. 직원을 고용한 자영업자 역시 월소득이 4.7%나 줄어 역대 최저치다. 내수시장 침체가 위기 수준을 넘어서 자영업자들을 생사의 갈림길에 서도록 만들고 있다.
대형 마트가 전통시장을 위협하는 요인이 아님은 수치로 입증된다. 전자상거래가 출범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소매판매액에서 전통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7%로, 대형 마트가 차지하던 24%보다 높았다. 그러나 2017년에는 대형 마트가 15%, 전통시장이 11%로 동반 줄어든 반면, 온라인 쇼핑은 같은 기간 13%에서 29%로 2배 이상 성장했다. 특히, 2013∼2018년 중 국내 대형 마트 수는 24개로 변함 없었지만, 이들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오히려 약 8% 줄었다.
이미 국내 유통산업의 현실은 대형 마트와 편의점·백화점을 합친 오프라인 판매액이 온라인 매출액에 훨씬 못 미친다. 국내 대형 마트 1위인 이마트는 지난 2분기에 1993년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고,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도 대형 마트들은 전통시장 인근에 신규 출점을 막는 ‘등록제한’과 의무휴업일 지정, 특정 시간 영업 금지 등 각종 규제를 받는다.
유통업계에 닥쳐오는 생존 위기를 절감하는 대한상의는 정부의 최근 결정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유통업계는 물론,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도 크다. 현 규제만으로도 서울에서는 복합쇼핑몰을 지으려고 2013년 서울시로부터 토지를 매입했지만 6년째 첫 삽도 뜨지 못한 기업이 있고, 심지어 2013년에 건물까지 완공했지만 개장하지 못한 곳도 있다.
전 세계가 유통 혁신을 위해 규제 철폐 경쟁에 몰입하는데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심각한 정책적 오판을 하지 않기 바란다. 오히려 대형 쇼핑몰과 전통시장이 창조적 협업을 통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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