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보다 작은영역도 관찰
말 달릴 때 네 다리 모두 뜰까
작은 호기심이 영화기술 만들어
도를 믿지 않는다고 하자 누군가 물었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원자는 믿느냐고. 현미경으로 원자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길 위에서의 대화는 어영부영 끝이 났다. 벌써 10여 년 전 일이다. 요즘 같았으면 ‘빛의 움직임도 볼 수 있는 세상인걸요’라고 덧붙였을지도 모른다. 사실이다. 빛은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이나 돌 정도로 빠르지만, 과학자는 그런 빛의 움직임을 사진으로 찍는다. 우주의 절대 한계 속도로 움직이는 빛을 대체 무슨 수로 보는 걸까. 게다가 ‘보는’ 행위 자체를 가능케 하는 존재인 빛을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해 봤자 직접 눈으로 보고 알아챌 수 있는 자연 현상은 아주 제한적이다. 운 좋은 날이면 맨눈으로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를 볼 수도 있겠지만, 아메바는 원자보다 100만 배는 큰 존재다. 400여 년 전 현미경이 발명될 때까지, 인류 문명 대부분의 시간 동안 원자와 아메바 사이는 말 그대로 미지의 영역이었다. 사실, 현미경을 사용한다고 해서 무한정 작은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리법칙에 따르면, 확대해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의 크기는 빛 파장의 절반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 한계는 대략 수백 나노미터(㎚) 정도. 이 정도면 박테리아는 관찰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까지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인간은 기어코 바이러스를 보고야 만다. 한창 바이러스의 존재가 의심되던 19세기 말∼20세기 초는 새로운 물리학이 태동하던 시기와도 일치한다. 현미경으로 볼 수 없는 미시세계는 뉴턴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게 분명해졌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특히 전자(electron) 같은 아주 작은 입자는 빛처럼 파동의 성질도 가진다는, 소위 ‘입자-파동 이중성’이 밝혀진다. 전자는 빛보다 수천, 수만 분의 1 더 짧은 파장을 가지므로, 그만큼 더 작은 것을 식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1931년 과학자들은 마침내 빛 대신 전자를 이용한 현미경을 개발해 바이러스를 관찰하는 데 성공한다. 요즘엔 바이러스의 1000분의 1만큼 작은 원자 하나 들여다보는 건 별일도 아니다.
아주 작은 세상이 오랜 시간 감춰진 채 존재해 온 것처럼, 찰나의 세상 역시 인간은 놓치고 살았다. 그 정점에 빛의 움직임이 있다. 사람은 보통 몇십 분의 1초에서 100분의 1초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까지 눈치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이면 빛은 서울에서 괌까지 이동한다. 이렇게 빠른 빛의 움직임을 잡아내고자 과학자들은 특별한 카메라를 개발한다. 빛 알갱이를 하나하나씩, 무려 150억 분의 1초 간격으로 기록할 수 있는 장치다. 이를 거리로 환산하면 빛이 2㎝ 움직일 때마다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2015년 영국과 미국 과학자들이 공개한 6장의 사진에는 거울 사이를 오가는 레이저 섬광의 모습이 그렇게 띄엄띄엄, 150억 분의 1초 간격으로 포착돼 있다. 별 쓸모는 없어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빛이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150여 년 전의 한가한 논쟁거리 중 하나는 ‘말이 달릴 때 네 다리가 모두 공중에 뜨는 순간이 있는가’였다. 문제 해결을 의뢰받은 사진작가 마이브리지는 일련의 장치를 개발한다. 1878년 공개된 ‘움직이는 말’이란 작품에는 25분의 1초 간격으로 찍힌 12장의 사진이 배열돼 있고, 각 사진은 2000분의 1초라는 짧은 순간 말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더불어 마이브리지는 이 사진들을 연달아 보여주는 일종의 동영상 장치도 개발하는데, 이는 영화 기술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지난 100여 년간 영화 예술과 산업이 우리 사회에 끼친 막대한 영향이 경마광들의 사소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셈이다. 빛을 보는 기술이 바꿀 미래의 세상 모습을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올봄에 블랙홀 이미지가 뉴스를 뜨겁게 달궜다. 남극과 하와이, 유럽과 미주 지역 망원경을 한데 엮어 사실상 지구만 한 망원경을 구축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보고자 하는 인류의 욕망은 한계를 모른다. 덕분에 시공간의 여러 극한 속에 숨겨진 세상 모습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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