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위원

‘혼(魂)과 색(色)의 작가’ ‘전통과 모더니즘 사이에 다리를 놓은 예술가’ ‘한국 채색화의 현대화를 견인해 새 지평을 연 선구적 화가’. 내고(乃古)이던 아호(雅號)를 순우리말인 ‘그대로’로 1980년대 들어서 바꿨던 박생광(1904∼1985) 화백을 일컫는 표현들이다. “역사를 떠난 민족,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에는 고유의 전통이 있다”는 말을 자주 한 그가 1985년 프랑스 파리의 ‘르 살롱’ 특별전에 내놓은 ‘그대로 화풍’ 작품들을 접한 현지 미술평론계는 ‘한국의 피카소’라고도 극찬했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화면 구성에서 분출하는 생명력, 황·청·백·적·흑의 오방색이 내뿜는 에너지와 괴기스러울 정도로 환상적인 분위기 등이 특징인 ‘그대로 화풍’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불교 고승(高僧)과 사찰의 불상·단청, 무속(巫俗)의 부적(符籍)·무당, 해학적 민화 등을 소재로 삼아 한국 토속 문화의 정수(精髓)를 방대한 스케일로 담아낸 그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젊은 시절 한때 스님이 되려고 진주보통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와 절을 찾아갔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결국 출가해 한국 불교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청담 스님이다. 박 화백은 진주농업고 재학 중이던 1920년 미술 교사 추천으로 일본 유학을 갔고, 1923년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한 뒤 줄곧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1945년 해방 직후 귀국해 고향에 정착한 그가 서울로 거주지와 활동 무대를 옮긴 것은 홍익대 출강을 시작한 1967년이었다. 실험적 작품의 시도를 거듭하던 그는 독창적 화풍을 완성해가면서 첫 국내 개인전을 1977년에 연 뒤, 본격적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최고의 안목을 지닌 미술사학자이면서 문인화가·수필가이기도 했던 김원룡은 그의 그림을 두고 “한국화의 정적(靜的) 세계를 깨고 힘센 동감(動感)이 넘치고 있는 것은 작가의 굳센 구도자적 정신 자세의 경지임에 틀림없다”고 했다.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지난 5월 28일 시작한 대규모 박생광 회고전이 오는 20일 끝난다. 암 투병 중이던 박 화백이 타계 15일 전에 그리며 아들에게 “이 세상 잘 살고 간다. 피리 불며 즐겁게 떠나는 노인”이라고 했다는 미완성 자화상 격의 ‘노적도(老笛圖)’를 비롯, 회화·드로잉 162점이 관객의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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