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크고 아름다운 카∼바레.”
‘물랭루주’의 창립자 조제프 올레가 내걸었던 목표다. 카바레는 프랑스어로 ‘무대’가 있는 주점을 뜻한다. 1889년 음악 홀로 문을 열었던 물랭루주는 올레의 바람대로 무려 130년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비결에는 물랭루주를 열정과 매력으로 가득 채웠던 ‘무대의 거장’들이 자리한다. 물랭루주의 무대는 14일 현재도 절찬리 공연 중이다.
◇‘캉캉 춤’의 창시자, 라 굴뤼(La Goulue·1865∼1929)= 본명은 루이스 웨버. 굴뤼는 대식가, 식충이를 일컫는 말인데, 그가 테이블 사이로 춤을 추고 다니면서 손님들의 술을 빼앗아 마셔 이 같은 별명이 생겼다. 그는 치맛단을 펄럭이는 춤으로 인기를 얻었다. 발을 높이 들어올리는 춤도 유명했는데, 물랭루주 주변에 환락가가 많았던 만큼 손버릇이 나쁜 손님을 상대로 이런 춤을 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영화 ‘물랑루즈’의 주인공, 잔 아브릴(Jane Avril·1868∼1943)= 루이스 웨버가 떠난 물랭루주에서 새로운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웨버와 달리 우울하면서도 우아한 이미지로 인기 높았다. 잔 아브릴은 영화 ‘물랑루즈’에서 니콜 키드먼이 캐릭터를 재해석하며 다시 명성을 얻었다.
◇물랭루주의 산증인,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1864∼1901)= 화가. 어릴 때 다리를 다쳐 평생 앉아서 지내야 했다. 그는 매일 밤 물랭루주를 찾아 풍경을 그렸다. 라 굴뤼와 잔 아브릴도 그의 화폭에 담겼다. 물랭루주의 첫 광고 포스터를 그린 것도 바로 툴루즈로트레크다. 파리의 풍속을 그려내며 화가로서의 명성을 이어갔다. 술과 향락에 빠지면서 건강을 크게 해쳤고, 36세에 사망했다.
◇영원한 연인, 장 가뱅(Jean Gabin·1904∼1976)= 물랭루주에서 데뷔한 프랑스 영화배우. 카바레 연예인 부부의 아들인 가뱅은 야성적이고 남성적인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영화 ‘영원한 연인’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같은 별칭을 얻었다. 2차 대전 후 미국 할리우드로 망명, ‘도망자’ 등에 출연했다. 만년까지 대중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프랑스 영화계의 살아 있는 기념비로 자리했다. 1951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우상을 받았다.
◇샹송의 작은 거인,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1915∼1963)= 프랑스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타고난 노래 실력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물랭루주에서는 1944년 첫 공연을 펼쳤다. 자그마한 체형으로 검은 옷을 즐겨 입었다. 지금까지도 익숙한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 등 무수한 명곡을 남겼다.
◇진정한 퍼포머의 등장, 미스탱게트(Mistinguett·1875∼1956)= 노래와 춤, 연기가 모두 훌륭해 호평을 받았다. 다소 거친 목소리로 부르는 샹송은 손님들의 귀를 매료시켰다. 과격한 동작이 많은 춤 ‘아파시 당스(apache dance)’로 공연 중 관객들의 시선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사로잡았다. 78세까지 무대에 설 만큼 열정도 가득했다. 캉캉 춤과 함께 물랭루주의 상징이 된 화려한 깃털 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방귀 아티스트, 조제프 퓌졸(Joseph Pujol·1857∼1945)= 방귀마저 예술로 승화한 인물도 있다. 조제프 퓌졸은 어릴 적 방귀를 마음대로 뀌는 능력을 발견했다. 이후 군대나 마을에서도 방귀 공연을 펼치던 그는 물랭루주 무대에까지 서게 됐다. 방귀로 웬만한 교향곡까지 연주했다던 퓌졸. 물랭루주에서는 그의 공연을 보고 웃다가 기절하는 손님도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토머스 에디슨은 그의 방귀 공연을 직접 촬영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소리까지 녹음되진 못했다.
김온유 기자 kimon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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