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 김지영과 남편 정대현으로 호흡을 맞춘 정유미(오른쪽)와 공유.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 김지영과 남편 정대현으로 호흡을 맞춘 정유미(오른쪽)와 공유.

- 영화 ‘82년생 김지영’ 소설과 비교해보니…

스토리 유사…전개방식은 달라
지영을 보는 남편 시선에 집중

이중적 남성 고발로 맺은 소설
영화선 일상 회복 희망적 결론

날선 논리보다 진한공감 끌어내
男 캐릭터의 전형·작위성 한계


2016년 발간된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
2016년 발간된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
조남주 작가의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이 마침내 영화로 제작돼 오는 23일 개봉한다. 2016년 발간된 이 소설은 지극히 평범한 주부 ‘김지영’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문제점을 매우 사실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나 30대 중반이 된 김지영은 누군가의 딸이자 직장 동료, 아내이자 엄마일 수 있는 보편적 인물. 그러나 일상에 만연한 차별과 구조적 불평등으로 의도하지 않은 비극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차분하게 묘사한 소설은 잇따라 불거진 ‘여성 혐오’나 성폭력, 미투(Me too) 운동 등과 맞물려 큰 화제를 낳으며 출간 2년여 만에 1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영화는 이를 바탕으로 정유미와 공유가 주연을 맡고 배우 출신의 김도영 감독이 연출한 것이다. 14일 첫 언론 시사회에서는 대체로 원작에 충실했다는 평이 많았다. 논란의 원작을 다시 소환해 영화와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살펴봤다.

◇줄거리=기둥 줄거리는 영화나 소설이나 대동소이하다. 아내이자 엄마인 김지영(정유미)이 경력단절과 육아 우울증으로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빙의’돼 말하는 이상 증세를 보인다. 놀란 남편 정대현(공유)은 이상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영을 걱정하며 비밀로 한 채 정신과 상담을 권유한다. 그러나 지영은 진료비가 아까워 상담을 포기하는데, 이런 사실이 지영의 시부모와 친정 식구들에게까지 알려지면서 비로소 가족들은 지영을 짓누르고 있던 삶의 무게에 눈뜨게 된다.

스토리는 유사하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소설은 정신과 의사가 지영과의 상담 내용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을 띠고 있다. 따라서 주인공이 3인칭으로 처리되고, 지영의 연령별 에피소드는 주로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것들로 채워져 있다. 반면, 영화는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지영과 이를 바라보는 대현의 심리에 집중한다. 현재의 고민, 부부간의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춘다.

◇캐릭터=영화와 소설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건 남편 대현의 캐릭터다. 공유가 연기한 대현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하는 남자다.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명절 때마다 집안일로 아내를 고생시키는 게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과감하게 전통을 바꿀 용기도 없는 소극적 남편이다. 소설에서 대현은 초반에 등장했다가 이내 퇴장하지만, 영화에서는 훨씬 역할이 크고 분량이 많다. 공유가 주는 부드러운 매력을 이야기에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엔딩=엔딩을 처리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소설의 엔딩은 좀 우울하다. ‘2016년’이라는 마지막 장에서 정신과 의사의 자기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김지영을 상담한 남자 의사는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한다. 지영의 케이스를 통해 자신보다 의사로서 뛰어난 자질을 가졌지만 결국 전업주부가 된 아내를 떠올리며 특별한 경험이 있었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자기 성찰은 딱 여기까지다. 병원의 상담사 여직원이 임신으로 그만두면서 업무에 차질이 빚어지자 후임은 꼭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같은 사안에 대해 내 딸과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들에게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남성들의 이중적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페미니즘적 비판이 서려 있다. 대신 영화의 엔딩은 보다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맘충’이라는 말을 들었을지언정 세월이 흘러 지영이 육아 스트레스에서 회복하고 안정적인 일상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페미니즘보다는 휴머니즘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통계 페미니즘 vs 가족 휴머니즘=일상을 다룬 소설이지만 페미니즘적 시각이 배어 있는 건 통계 자료 때문이다. 소설에는 각 에피소드에 어울리는 객관적 통계와 팩트가 자주 제시된다. 예를 들면, 1990년 출생 성비 불균형(여아 100명당 남아 116.5명), 남녀차별금지법 제정과 여성부 출범, 2003년 여성 근로자 육아휴직 사용 비율(20%), 2005년 100여 개 기업 여성 채용 비율(29.6%) 등이다.

하지만 영화 속엔 아쉽게도 이런 딱딱한 통계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대신 두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에 정보와 감정이 뒤섞여 있다. 소설을 보면서 독자들은 지영의 거짓말 같은 일상적 비극과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를 마주하며 ‘미처 몰랐던 사실’을 깨닫는다면, 영화에선 지영과 대현, 지영과 친정엄마가 감정적으로 부딪치는 대목을 보며 눈물짓는다. 이날 기자 시사회에서도 보기 드물게 이곳저곳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페미니즘의 날 선 논리보다 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공감에서 오는 감동이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불편한 진실=바로 이 점에서 영화 보기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관객도 적지 않다. 페미니즘보다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췄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는 대부분 전형적이고 작위적인 탓이다. 눈치 없이 아들만 챙기는 가부장적 아버지, 직장 내 여성 직원에게 성차별 발언을 하는 몰상식한 상사, 몰래카메라의 존재를 알고도 침묵하는 위선적인 남자 동료들, ‘맘충’이라는 여성 혐오 표현을 남발하는 남자들이 등장해 여성에게 은밀한 폭력을 가한다. 소설 발간 당시에도 이런 지적은 있었다. 그러나 현재에서 10∼20년 전의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의 소설과 달리,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벌어지는 차별적 시선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과연 아직도 저럴까’라는 거북함이 드러난다.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여성 인권이 강화된 사회 분위기에서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게 아니냐는 해석이 그것이다.

어쨌거나 ‘82년생 김지영’에 관한 논의는 크고 작은 사회 이슈들과 함께하며 그동안 꾸준히 성장했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이 차별과 폭력에 저항했고, 젠더 문제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여성의 연대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영화는 제도적 차별은 사라졌으나 내면화된 성차별적 요소가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은 물론, 남성들이 보고 느껴야 할 영화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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