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운 논설위원

중구난방(衆口難防). 여럿이 한꺼번에 마구 지껄임을 이르는 말. 뉘앙스가 다른 의미도 있다. 여러 사람의 입은 막기 어렵다는 뜻이다. 일사불란(一絲不亂).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 질서나 체계 따위가 잘 잡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 한 달여 정국을 달아오르게 했던 광화문과 서초동 대규모 시위의 특징은 중구난방과 일사불란으로 요약할 수 있다. 광화문 시위는 공식 주최 측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단체가 연단을 만들고 마이크를 설치했다. 주최 단체의 성격에 따라 주장도 달랐다. 서로 싸우기까지 했다. 기본적인 메시지는 있었다. ‘조국 퇴진’. 아마추어 수준의 광화문 시위와 비교하면 서초동 시위는 프로 같았다. 단일 주최자, 시위대 전체를 리드하는 진행자. 얼굴이 많이 알려진 연설자. 동시에 울려 퍼지는 구호. 핵심적인 메시지는 ‘조국 수호’.

중구난방과 일사불란이 대결하면 후자가 유리하다. 적어도 전쟁사에서는 압승이었다. 기원전 216년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 원정대는 보병 3만5000명, 기병 1만 명이었지만 일사불란한 유인·포위 작전으로 보병 6만5000명, 기병 7000명의 로마군을 섬멸했다. 서기 199년 원소의 10만 대군에 맞선 조조의 1만여 정예군은 식량이 떨어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일사불란한 기습 작전으로 승리하면서 중원의 패자로 발돋움했다. 원소의 아들·참모들의 중구난방식 설전과 내분이 패인으로 기록됐다.

민주주의 승부는 전쟁과 다르다. 광화문의 메시지는 중구난방이었지만 명분에서 앞섰다. ‘조국 사태’는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고 호소했다. 서초동 시위는 체계적이었지만, 명분이 약했다. 조국 수호가 검찰 개혁이라는 등식은 성립이 어려웠다. 조국 수호 구호가 뜨거울수록 여론은 멀어져 갔다. 문재인 대통령·더불어민주당 지지율까지 떨어졌다.

군사적 대결이었다면 서초동이 이겼을 것이다. 그러나 서초동이 먼저 집회 중단을 선언했다. 마지막 집회의 주제가 ‘우리는 돌아온다(We’ll be back)’였기 때문에 백기를 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판정패로 볼 수는 있다. 서초동이 광화문에 고개를 숙이자 버티고 버티던 조국 장관이 결국 낙마했다. 광화문이 서초동을 이겼다. 중구난방이 일사불란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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