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잘 있어요!’ 베이징을 출발한 지 11시간 만에 평양에서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이 짧게 소식을 전해 왔다. 그리고 생중계가 안 돼 평양에서 말레이시아로, 다시 서울로 이어진 문자 중계는, 15일 오후에 치러진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3차전 한국-북한 경기의 ‘0 대 0’ 무승부 소식을 전해왔다. 아무리 깜깜이 원정 축구지만 해도 너무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은 휴대전화를 지참하지 못해 평양행 비행기에 탑승한 순간부터 사실상 연락 두절 상태였고, 휴대전화로 알람을 맞출 수 없어 자명종 시계를 준비해야 했다. 대표팀은 이날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무관중 상태로 원정 경기를 치렀다. 인터넷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어 벤투 감독의 공식 기자회견도 하루 늦게 서울에 전해졌다. 고독하고 기묘한 시합이었다.
모든 사안은 북한의 철저한 통제 속에 이뤄졌다. 선수단 규모도 25명의 선수단과 코치진, 지원 스태프, 임원 등 총 55명으로 최소화해 평양 원정길에 올랐다. 원정 응원단은 북한의 ‘묵묵부답’으로 거절당했다. 북측이 지정한 호텔에서 벗어날 수도 없어 대표단에는 철창 없는 감옥이었다. TV 생중계도 완전히 무산됐다. 국가대표팀이 현장과 TV 중계방송을 통해 응원하는 팬도 없이 경기를 치른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홈페이지를 통해 경기 시작과 전반 종료, 경고 상황, 교체 투입 상황만 전해졌다.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의 경기 중계권은 홈팀에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이번 경기의 생중계를 불허해도 FIFA 규정 위반은 아니다. 한국 방송사들은 이번 경기 중계를 위해 에이전트를 통해 북한과 협상을 해왔지만, 북한의 비상식적인 대응으로 생중계가 무산됐다. 북한은 스포츠 중계의 개념 자체가 없는 데다 자국과 상대 팀 축구 팬의 볼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다. 조국을 위해, 나라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외롭게 북한 원정에 나선 대표 선수들을 수호해야 할 정부는 “북측에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평양 원정 경기는 생중계와 응원단·관중도 승리도 없는 4무(無) 경기로 끝났다.
이처럼 대표팀은 국가를 대표해 적지에서 위험한 경기를 치르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 올림픽’ 타령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개막된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바로 이 자리에서 2032년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이 열리는 날을 꿈꾼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2032올림픽 서울·평양 공동 개최 추진을 언급한 것만 벌써 세 번째다. 지난달 25일 미국 뉴욕에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을 접견하는 자리에 이어, 30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서도 평화 올림픽을 언급했다.
장웅 북한 IOC 위원장은 스포츠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석하면서 주장했다. 그는 스포츠로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것이라는 기대는 “천진난만한 생각”이라며 “정치군사적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스포츠 교류는 한계가 있다”며 남측을 압박했다. 북한은 스포츠를 정치 수단으로 여기는 기괴한 체제다. 문 정부는 올림픽이고 월드컵이고 국제 스포츠 행사만 있으면 ‘남북 단일팀 구성’ ‘북한 선수단 초청’ 등을 단골 메뉴로 보도 자료를 배포한다.
스포츠가 정치에 철저히 종속되는 북한 체제를 상대로 구걸하듯 하는 초청이나 단일팀 구성 시도는 이제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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