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인들의 기업가 정신
솔선수범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
“혁신의 시작과 끝 리더가 책임
직원은 그 과정에 참여하면돼”
지독한 도전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
“1등은 도전을 해야 오는 것
사심없이 저지르면 결국 성공”
초심 지키기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
“회사 성장하면 초심 잃기 쉬워
그때마다 새로운 창업가 만나”
국내 벤처기업인들의 모임인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에서 벤처기업 인증을 받아서 정부지원을 받고 있는 벤처 인증기업은 3만7000여 개다. 또 규모가 커진 셀트리온이나 네이버 같은 벤처이력기업은 3만5000여 개다. 합쳐서 7만2000개가 넘는 벤처기업이 있고, 그중에서 572개 기업의 연 매출이 1000억 원을 넘는다. 572개 사의 총매출액은 약 130조 원이 된다.
벤처인들은 대체로 지난 1995년 벤처기업협회가 설립된 당시를 우리나라 벤처의 태동으로 본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24년간 한국 벤처를 이끌어온 리더십은 무엇일까?
벤처인들은 그 요체를 ‘지독한 도전, 실패와 재기, 그리고 솔선수범’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제는 ‘어려운 벤처’(기술혁신)와 ‘쉬운 벤처’(앱 기반 비즈니스 모델)가 나란히 가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또 도전은 ‘알고’ 해야 하며, 알기 위해서는 공부를 통해 항상 끊임없는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 개발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또 하나, ‘솔선수범’과 ‘초심 지키기’를 벤처 리더십의 필수 요소로 꼽는다.
지난 18일 찾은 경기 광주시 오포읍 소재 주성엔지니어링 회사 건물 벽에는 대형 태극기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황철주 대표이사 사장은 “회사가 힘들 때 한번은 미국에 갔다가 애리조나 지역의 한 주유소에 들른 적이 있는데 성조기가 걸려 있는 걸 보고 깨달았다”면서 “주권의식이 없으면 혁신을 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게 됐으며, 태극기를 붙여놓은 뒤 직원들의 태도도 달라진 걸 느낀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반도체 장비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조명장비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 황 대표는 벤처인들이 꼽는 우리나라 벤처 1세대의 대표주자이다(벤처인들은 대체로 협회가 창립된 1995년 전후부터 코스닥위원회와 증권거래소가 합병된 2005년까지를 1세대, 이후 2010년까지를 2세대, 2010년 이후 현재까지를 3세대로 구분한다. 3세대를 굳이 나누는 이유는 2010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모바일 스마트폰이 상용화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앱 비즈니스 모델이 활성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 대표는 자신의 벤처 리더십에 대해 “‘전쟁에서 지면 노예가 되지만, 경쟁에서 지면 거지가 된다’는 신념으로 항상 보이지 않는 적을 두렵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벤처는 혁신을 통해서 성장하는 기업이며, 혁신, 1등, 신뢰는 리스크와 속도와 시간의 변수를 극복한 결과로 나오는 것이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리스크를 책임지며 어렵고 힘든 걸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이 벤처인의 리더십”이라고 정의했다. 또 “혁신에는 항상 리스크가 있고, 어려움이 있어 이를 극복해야 되는데, 이를 극복하는 사람이 창업가고, 벤처인이고, 시대의 리더”라고 덧붙였다. 주성엔지니어링의 직원은 550여 명이며 이 중 연구원이 360여 명을 차지하고 있으니, 전체 직원의 62%가 연구·개발(R&D)에 매진하고 있는 셈이다. 황 대표는 그만큼 혁신을 위해서는 연구개발(기술개발)이 전제라고 확신하고 있다.
‘솔선수범’도 우리나라 벤처인들이 공통으로 꼽는 벤처 리더십의 핵심이다. 솔선수범을 보여주는 리더, 책임지는 리더로 풀이된다. 황 대표는 “지금도 혁신의 처음은 제가 출발하고, 혁신의 완성도 제가 한다”며 “시작과 끝을 마무리하는 사람이 리더이며, 그 과정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직원들이다. 결정해주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리더”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역시 대표적인 벤처 1세대의 성공한 주자로 꼽히는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이사 회장도 “앞장서서 으?으? 하며 전체 분위기를 끌어가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또 한 부류는 솔선수범하는 거다. 누구보다도 생각이 앞서고, 행동도 부지런하고 개방적 사고를 가져야 하며, 벤처인들은 대부분이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창업을 했기 때문에 어느 엔지니어보다 앞선 생각을 하는 솔선수범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회사 내부적으로는 기술이나 사고 자체가 솔선수범해야 하고, 바깥으로는 벤처 생태계 전체를 위해서 움직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조 대표가 생태계를 중히 여기는 이유는 생태계가 좋으면 전체가 롱런할 수 있지만, 개별회사가 좋으면 전체가 롱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벤처인들에게는 실패도 리더십을 만드는 커다란 자산이다. 벤처인들은 “당연한 얘기지만, 도전이 있어야 성공이든 실패든 오는 거 아니냐”며 “젊은 창업자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기를 바란다”고 응원한다.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이사 사장은 “창업만큼 좋은 인생학교가 없다. 일단 창업하고 저질러라. 도전해라. 도전이 제일 중요하다. 1등은 도전을 해야 온다. 도전도 안 했는데 뭐가 있겠나. 도전했다가 실패한다면 그 또한 자산”이라며 “도전한 다음에 창조적으로 수습을 하라. 그러면서 크는 거다. 자기 실력이 쌓이는 거다”라고 강조했다.
남 대표는 “저도 창업 이후 크게만 봐도 4번의 위기를 겪었다”며 “그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최선을 다하는 기본과 새로운 활로 모색, 사심 없이 나를 던지는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창업을 하면 인생을 배우게 될 것이다.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실행이 중요하다”면서 창업과 벤처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 권했다.
이들은 실패를 겪은 사람을 인생 패배자로 낙인 찍으며 잊어버리는 우리 사회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남 대표는 “실패도 자산으로 인정해주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회장도 “우리나라는 실패한 경영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은행에서도 그렇고, 한마디로 재기불능, 재기불허의 나라다. 창업자가 망해서 가장 재기하기 힘든 나라가 한국”이라며 “사회적으로도 아직 망한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없다. 미국 같은 경우 몇 번 망했는지가 플러스 알파가 되지만, 한국에서는 그냥 마이너스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벤처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또 하나의 리더십 필수요건은 ‘초심 잃지 않기’다. 자신도 두세 번 위기를 겪으며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는 안 회장은 “초심은 정말 어려운 얘기다. 제 초심은 일단은 퍼스트 무버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심을 잃는 게 생각보다 너무 쉽더라.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초심을 잃지 않았다고 우기는 거지, 실제 회사가 성장하면서 오는 희열이 초심을 잃게 하고 흔드는 큰 원인이더라”며 “그때마다 저는 주변에 있는 새로운 창업자, 젊든 나이 들어 창업했든 새로운 창업자들의 느낌, 자세, 이런 걸 보려고 자주 만나고 있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 저를 돌이켜보는 경우가 정말 많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공부는 물론이고, 그런 초심의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 저는 그런 방법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초심의 열정은 세대 구분이 없다. 벤처 2세대로 분류되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2007년 9월 NHN을 떠나면서 ‘괴테의 이야기가 내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게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내 사업 신대륙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도전 정신의 초심을 드러낸 바 있다.
아쉬움도 있다. 안 회장은 “과거 1세대의 기술벤처가 ‘어려운 벤처’였다면, 지금의 벤처들은 앱을 기반으로 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쉬운 벤처’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바람직한 벤처의 모습은 이 둘이 균형을 이루면서 트렌드를 쫓아가는 것이지만, 소재·부품·장비 등 원천 기술력은 세계 1등의 독보적인 기술경쟁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윤림·이해완 기자 bestm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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