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의 한 건물 사무실에 열 명가량의 남녀가 모였다. 이들은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며 껄껄 웃는가 하면 술잔을 들어 올리고 사진을 찍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타칭 ‘연극에 미친 사람들’이다. 평일 낮엔 생업에 종사하고 저녁 시간과 휴일을 이용해 연극 연습을 해 온 덴탈씨어터 단원들이다. 덴탈씨어터는 연극을 사랑하는 치과인의 모임으로,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 ‘민중의 적(An Enemy of the People)’을 준비하고 있다.
“치과 의사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치위생사들이 함께 합니다. 연극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는 분들인데, 막말로 이야기하면 ‘또라이’ 끼가 있어야 해요. 낮에 종일 일하고 밤늦게 연습해야 하는데, 이렇게 휴일까지도 나와야 하니까요.”
오종우(74) 연출은 이 극단을 창립한 주역이다. 그는 평생 치과 의사로 일해 왔는데, 늘 연극과 함께 했다. 서울대 치대 연극반장이었던 그는 군의관 시절에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한 것을 계기로 프로 연극인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극단 연우무대 단원으로 활동하다가 대표까지 맡았으나, “연극에만 전념하는 후배들에게 미안해서” 물러났다.
덴탈씨어터는 1978년 창단 이후 매년 1~2작품씩 무대에 올려 왔다. 20주년 기념 책자에 오른 공연 목록이 빼곡하다.
“이렇게 오래 지속할 줄 몰랐어요. 대학로 전문극단도 10년을 유지하기 힘들잖아요. 한 작품을 준비하려면 반년이 넘게 걸립니다. 3개월은 대본과 연극 등을 함께 보며 어떤 작품을 올릴지 탐색하고, 이후 3개월은 연습을 하는데 거의 매일 밤 모이다 보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맑아집니다. 그러니 하는 거지요.”
오 연출은 “본인 열정뿐만 아니라 가족 이해가 곁들여져서 연극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자녀 양육에 부담이 있는 젊은 치과인들이 기피하는 바람에 단원들 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연습에 참여한 단원들 연령이 실제로 높아 보였으나,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만큼은 힘찼다. 연출과 조연출(윤서하)의 지침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펼치고, 다른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의견을 나눴다.
20주년 기념작 ‘민중의 적’은 근대극 선구자인 헨리크 입센 희곡으로, 사회 공동체의 상충하는 가치를 다루고 있다. 공동체의 진실과 이익이 충돌했을 때, 그것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정치적 소수를 보호해야 하는 민주주의 신념이 위기의 순간에도 지켜질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하는 주인공 토마스 스토크만 박사 역을 박승구 단원이 맡았으며, 이석우, 이동찬, 허경기, 장영주, 박해란, 김형순, 이용균 단원 등이 출연한다.
서울 종로 5가 연동교회 뒤 가나의 집 열림홀에서 오는 31일 오후 8시 개막한다. 1일 오후 8시, 2일 오후 5시, 3일 오후 3시 공연이 이어진다. 관람료는 무료.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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