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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석(1921~1970)

김일성이 ‘작가 예술인들 속에서 낡은 사상 잔재를 반대하는 투쟁을 힘 있게 벌일 데 대한 교시’를 내리자 북한 전역에서 사상투쟁이 벌어졌다. 아버지 김순석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1958년 12월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시분과위원장 직에서 해임, 1959년 초에는 부르주아의식을 청산하지 못한 시인으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좌천됐다.

이런 아버지를 두었던 북한에서의 내 삶은 모순 그 자체였다. 대학을 가려고 해도 출신성분과 가정환경이 중요했고, 노동당에 입당하려 해도 아버지의 경력이 발목을 잡곤 했다. 북한 주민 누구에게나 있는, 그 흔해 빠진 훈장 한 개 못 받고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였지만, 내게 남기신 건 “정직하게 살라”는 일상의 말씀이셨다.

북에서도 그랬고 남에서도 정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정직이란,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체제 하에서도 양심의 기준이 되고 삶의 가치를 규정지으며 도덕의 기준이 된다는 걸 체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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