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수많은 종교·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나무 세계수. 세상의 지붕인 하늘은 왜 떨어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하늘, 땅, 지하를 연결하는 세계수를 상상해 냈다.
전 세계 수많은 종교·신화에 등장하는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나무 세계수. 세상의 지붕인 하늘은 왜 떨어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하늘, 땅, 지하를 연결하는 세계수를 상상해 냈다.

■ 우주과학사

이관수의 멀티버스 - ② ‘하늘’에 대한 인류의 고찰

“거인·높은산·세계수 등이 떠받치고 있어서” → “태양·별 등 천체들이 딱딱한 가상의 구에 고정돼 있어서”
코페르니쿠스 지동설로 이런 전통에 반격 시작… 케플러의 행성 타원 운동 발견으로 이어져


왜 해는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가? 밤하늘의 별들은 왜 추락하지 않는가? 사람들의 말과 생각이 자라나다 보면, 종종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옛사람들은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주변에서 찾았다. 바로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하늘을 날아가는 새였다. 높이 나는 새는 세계 도처에서 태양의 상징으로 간주됐다. 기원후 10세기경 고대 짐바브웨 왕국을 건설했던 쇼나족은 물과 호수의 신 지바구루가 두 마리의 태양새를 부렸다고 믿었다. 지바구루는 비를 내리고 태양조를 날려서 땅에 풍년을 내려줬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아즈텍인들은 독수리를 태양신 토나티우의 상징으로 삼았다. 아무래도 오래된 것은 이집트 신화다. 기원전 31세기경 통일 왕조가 들어선, 그 이전부터 높이 숭배된 태양신 라와 호루스는 모두 매로 상징됐다. 세계 각지의 불사조 또는 불새 설화들에도 태양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람들이 만든 물건도 자연을 설명하는 실마리가 됐다. 기원전 20세기 무렵에 우랄 산맥 남쪽, 카스피해 북동쪽 평원에서 바큇살 바퀴가 등장한다. 함께 출현한 이륜 전차는 1000년도 안 돼 동으로는 산둥반도부터 서로는 북독일 평원까지, 남으로는 북인도에서 이집트까지 전파됐다. 당시 나는 듯 질주하는 이륜 전차는 경이로웠다. 더구나 바큇살은 햇살 같았다. 이륜 전차는 마땅히 숭배할 힘을 상징하게 됐다. 베다의 수르야, 북유럽 신화의 수나, 수메르의 우투, 그리스 신화의 헬리오스 등등. 이들은 모두 바큇살 바퀴 이륜 전차를 타고 하늘을 질주하는 태양신이었다. 때로 이륜 전차 태양신 신화에 불새 신화의 흔적이 섞이기도 했다. 요즘은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에 빗대는 일이 잦은데, 이를 현대인의 오만이라고 꾸짖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오만이라면 그 ‘오만’은 무척 오래됐다.

하지만 태양을 새나 이륜 전차같은 사물에 빗댄 것은 기껏해야 정성적인 설명에 머물렀다고 할 수 있다. 도약은 모호하게 시작한 추상 개념에서 비롯됐다. 하나의 하늘이란 관념이 등장한 것이다. 하늘을 실체로 여기게 되면 하늘은 왜 떨어지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에서 거인이 땅과 하늘을 나눴다는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우리 설화에서는 마고할미 또는 선문대할망이 기지개를 켜다가 하늘을 밀어 올렸다고 하고, 중국 오나라의 서정은 혼돈 중에 반고가 태어나 하늘과 땅을 나누고 하루에 1장씩 1만8000년 동안 자라나면서 하늘을 밀어 올렸다고 전했다.

높은 하늘이 지붕 노릇을 한다면 무엇인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야 했다. 거인·높은 산·세계수 이들이 상상 속 기둥 노릇을 했다. 마야 유물 중에는 거대한 기둥이 세상 한가운데 하늘을 받치고, 사방에 작은 세계수 네 그루가 보조하는 그림이 있다. 또 다른 그림에는 중심 기둥이 없고 동서남북 세계수 네 그루가 하늘을 받치고 있다.

네 기둥, 세계수, 거인 신화가 밤하늘에 적용되면 북녘 기둥이 중심 역할을 한다. 별들이 북쪽 하늘에서 하루 한 바퀴 공전하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의 중심이 북쪽에 있다고 확신했다. 이런 관점은 인도에서 극단화된다. 기원후 정립된 힌두 우주론은 사람이 사는 섬부주 대륙이 메루산(불교의 수미산) 남쪽에 있다고 보았다. 드높이 치솟은 메루산에는 여러 하늘이 층층이 걸쳐 있는데 해·달·별들이 아래쪽 하늘에서 맑고 신묘한 바람에 실려 땅과 평행한 동심원을 따라 움직인다고 믿었다.

트룬드홀름에서 발견된 태양 전차 청동 모형.
트룬드홀름에서 발견된 태양 전차 청동 모형.

무엇인가에 매달려 있는 것도 떨어지지 않는 방법이다. 이집트인들은 별들이 천공의 신 누트의 몸에 박혀 있다고 믿었다. 누트가 둥근 하늘을 상징한다면, 땅속은 어땠을까? 지하세계가 복잡하다는 상상은 수메르 신화에서 등장했다. 수메르인들은 지하에 망자들뿐만 아니라 태양신 우투의 보석나무 정원이 있다고 믿었다. 우투는 매일 밤 자신의 정원을 지나간다. 그리스 신화에 이르면 지하가 하늘과 엇비슷한 크기로 커졌다. 기원전 7세기경 헤시오도스가 쓴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하늘에서 떨어뜨린 청동모루가 땅에 떨어질 때까지, 땅에서 하데스(지하세계)의 밑바닥으로 떨어질 때까지 각각 ‘아홉 낮, 아홉 밤’ 날이 걸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헬리오스(또는 아폴로)가 하루 한 바퀴 도는 세상은 둥글둥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기원전 4세기부터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 여러 신화의 흔적을 짙게 담아낸 우주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땅도 하늘도 공처럼 둥글다고 여겼다. 가운데 땅이 있고, 그 ‘위’에 여러 겹의 둥근 하늘이 땅을 층층이 감싸고 있다. 안팎으로 나뉜 땅과 하늘은 중국 한나라 때의 혼천설을 닮았고, 하늘을 여러 층으로 본 것은 힌두 우주관과 닿아 있다. 해, 달, 오행성, 별들이 둥근 하늘에 박혀 있다는 생각은 이집트적이었다.

각각의 하늘은 영원히 완벽한 자전 운동을 하는 얇은 공 껍질, 즉 천구였다. 천구를 구성하는 완벽한 천상의 물질은 무엇이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후학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융합해 아이테르(Aether)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테르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이집트 신화의 슈(Shu)처럼 ‘맑은 공기의 신’이었다. 플라톤은 이 명칭을 재활용해 지상계 원소인 흙·물·공기·불에 이어 아이테르가 가장 투명한 다섯 번째 원소일 수 있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아이테르가 수정처럼 딱딱한 덕분에 천체들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투명한 덕분에 위층의 별빛이 아래층 하늘을 통과해 땅으로 내려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자연철학의 우주관은 태양이 딱딱한 수정 천구에 박혀 있기 때문에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흙·물·공기·불 그리고 아이테르의 성질과 차이에 대한 방대한 설명은 이슬람 황금기와 중세 유럽 내내 자연철학의 근간이 됐다. 라틴어 완곡어법을 애용한 중세 후반 유럽의 연금술사들은 아이테르를 제5원소(quintessence)로 부르며, 연금술의 근간으로 여겼다. 신화적 상상력을 두루 포섭한 자연철학 우주관은 그만큼 폭넓은 설명력을 지녔던 것이다.

문제는 자연철학 우주관을 구체적 실천에 적용하면, 자잘한 모순과 복잡한 문제들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현대인이면 누구나 알 듯이 연금술사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또 행성들이 완벽한 원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기원전 2세기부터 고도화된 계산 천문학은 당시 자연철학의 한계 내에서 천문 관측과 예측 계산 수치를 맞춰야 했다. 그래서 갖가지 복잡하고 번거로운 계산 편법들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천구가 기하학적 중심이 아닌 별도의 이심(eccentric)을 중심으로 자전운동한다고 가정했다. 또 행성은 천구가 아니라 천구 위의 작은 주전원(epicycle)에 실려 있고, 지구에서 관측하는 행성의 운동은 천구의 자전운동과 주전원의 자전운동이 복합된 것이라고 가정했다.

요하네스 케플러의 ‘플라톤의 다면체 구조 태양계 모형’.
요하네스 케플러의 ‘플라톤의 다면체 구조 태양계 모형’.
자연철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이 근본 원리를 명확하게 밝히는 우월한 분야이고, 예측 수치나 따지는 계산 천문학은 각종 편법을 동원하는 저급한 분야라고 폄하했다. 반면 계산 천문학자들끼리는 자연철학 우주관을 소박한 초심자용 모델로 간주했다. 나름 저항의식을 품었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자연철학자들에게 눌려 지내던 계산 천문학 전통이 고답적인 자연철학적 전통에 가하는 반격의 시작이었다.

현대인의 추측과 달리, 천동설 또는 초기 지동설 어느 쪽을 따르든 예측의 정확도는 별 차이 없었다. 다만 천동설에서는 수성천구-태양천구-금성천구의 순서와 크기가 항상 헷갈렸지만, 코페르니쿠스 지동설에서는 수성천구-금성천구-지구천구의 순서와 크기가 자연스럽게 결정됐다. 또 잡다한 계산 술수들을 크고 작은 원운동의 복합으로 통일했다. 크기를 정할 때의 자연스러움, 예측 계산을 할 때의 통일성. 이런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장점이 동료 천문학자들에게 호소력을 지녔다.

반면에 코페르니쿠스는 자연철학적 문제점들은 무시했다. 천동설에 따르면 모든 천구의 중심은 지구지만, 지동설에 따르면 지구를 비롯한 행성 천구들의 중심은 태양이고, 달 천구의 중심은 지구였다. 그렇다면 딱딱한 달 천구가 역시 딱딱한 지구 천구를 뚫고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도 지구 천구와 달 천구가 항상 순조롭게 회전한다고? 코페르니쿠스는 천문학적으로 지동설이 더 좋으니, 그에 맞춰 자연철학을 수정하라는 식이었다.

자연철학과 천문학의 타협을 추구한 티코 브라헤와 그의 제자들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태양 주위를 다시 몇몇 행성이 공전하는 모형들을 논의했다. 만일 계산 정확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실용주의적 천문학을 추구한 중국이나 인도였다면 이런 문제는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반면 유럽인들은 실용적인 관점에서는 공리공론일 수밖에 없는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1609년 천구와 원운동 개념을 포기한 케플러는 집요한 공리공론의 절정이었다. 그가 고심한 문제는 원운동으로 예측한 화성의 위치가 실제로 관측한 화성의 위치와 가끔 최대 8각분(60각분=1도), 시간으로는 30초가량 다르다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은 물론 당시 항해술에서도 전혀 쓸모없고 무의미한 문제였다. 겨우 이런 이유로 케플러는 2000년 내려온 천구 개념을 버렸다. 타원 운동을 가정하면 예측 정밀도가 좋아지는데, 딱딱한 천구는 타원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태는 이때부터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천동설에서는 태양과 행성은 자전하는 딱딱한 수정 천구에 박혀 있기 때문에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일정하게 운동한다. 타원궤도 지동설에서는 지구와 행성들이 허공을 홀로 알아서 가로지른다. 그런데도 저 멀리 날아가 버리지 않고 태양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맴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인류는 태양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다가 지구와 행성들이 우주 곳곳으로 흩어지지 않는 이유를 묻게 됐다. 데카르트와 뉴턴을 통해 탄생한 근대과학은 이 질문에서 비롯됐다. 과학사학자


■ 용어 설명

트룬드홀름 태양 전차 : 1902년 덴마크 셸란 섬의 트룬드홀름 지역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기원전 14세기 초에 제작됐다. 말 한 마리가 이륜 전차를 끄는 청동제 모형으로 전차 위에 실린 청동 방패에 얇은 금제 태양판이 붙어 있다. 말의 네 다리에 바퀴가 달려 있어 전체적으로는 6륜이다. 길이 54㎝, 높이 35㎝, 폭 29㎝. 제례 중에 끌고 다니면서 태양의 운동을 묘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뉴브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도 있으나, 덴마크 국립박물관은 북유럽 지역 내에서 자체 제작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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