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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길(1943∼1981)

늦은 추석 성묘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네요. 아버님 유택에 지난봄 어머니가 심은 꽃잔디가 얼마 전 태풍도 견뎌내고 뿌리를 잘 내렸습니다. 잡초 뽑으신다고 열심이시던 어머니, 제상 차리던 큰 며느리도 보셨겠지요. 어느새 저는 아버지보다 더 늙어버려 노안도 온 것 같고 머리도 희어져서 염색하고 다닐 정도의 나이가 돼 버렸어요.

기억도 가물가물한 40년 전 그날을 회상합니다. 아버지는 간다는 소리도 없이 떠나셨지요. 뇌종양 수술 후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계시던 어느 새벽, 초등학교 5학년·3학년 두 아들과 30대 젊은 아내를 남기고 허망히 떠나셨습니다. 그 새벽 다급히 저희를 데리러 온 고모의 초인종 소리에 큰일이 났구나, 하고 가슴 철렁했던 그 느낌은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땐 슬프다거나 원통하다거나, 별 느낌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긴 세월을 어머니와 동생과 저 세 식구는 씩씩하게 살아 냈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지요. 칠순이 넘으셨지만, 아직도 비교적 건강하시고 친구분들과 여행도 다니시며 바쁘게 사십니다.

아버지 모교에 놀러 가서 난생처음 대학 운동장에서 뛰놀던 저에게 “주현이도 나중에 아빠 대학 후배 돼야지” 하셨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어요. 저는 아버지의 대학 후배가 됐고, 큰며느리도 제 장인 장모도 모두 아버지와 대학 동문입니다. 동생은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회사 이사가 됐어요. 저희 식구는 별일 없이 잘 지냅니다. 꽃잔디 만발하는 내년 한식 때 또 봬요. 어머니와 큰며느리, 작은아들, 작은며느리, 손녀딸이 봄나들이 삼아 뵈러 갈게요.

아들 백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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