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국회에서 2020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 임기 반환점을 20일 앞둔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향후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문 대통령의 이번 국정연설에는 현 시국(時局)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이하고 현실과도 동떨어져 있다.
문 대통령은 “공정이 바탕이 돼야 혁신·포용·평화도 있을 수 있다”며 “경제뿐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은 임기 동안 ‘공정’을 국정 운영의 목표로 삼겠다는 구상 같다. 그러나 반칙과 특권, 위선과 거짓으로 점철돼 가장 공정하지 못한 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 나라를 두 동강 낸 대통령이 진솔한 사과 메시지도 없이 공정 사회를 만들겠다니 공감하기 어렵다. 공정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허하고 초라해진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가장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정의사회를 구현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경제 문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흐름은 좋고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유리한 통계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가령, ‘올해 9월까지 평균 고용률이 66.7%로 역대 최고 수준이고, 청년 고용률도 12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제조업 취업자는 18개월째 감소했고 청년 체감실업률은 역대 최고 수준(20%)으로 상승했다. 국민은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대통령의 경제 상황에 대한 이런 ‘아전인수’식 해석에 국민은 희망을 잃고 불안해하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9월 24∼26일)에 따르면, 향후 1년 우리나라 경기 전망을 물은 결과, 13%만이 ‘좋아질 것’이라고 했고, 56%는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실업자가 향후 1년간 ‘증가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53%인 반면, ‘감소할 것’은 18%였다. 문 대통령은 확장예산을 통해 민생·경제 분야에서 실질적 성과를 끌어내고, 경제에 활력을 높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그러나 경제 정책 기조의 전환 없는 단순한 재정 지출 확대는 결코 경제 활력의 마중물이 될 수 없다. 성과 없는 선심성 포퓰리즘에 빠질 뿐이다. 올 예산 증가분의 47%가 일회성 노동과 보건·복지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 우려된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국민의 요구는 제도에 내재 된 합법적인 불공정과 특권까지 근본적으로 바꿔내자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의 비리를 ‘합법적 불공정’이라며 감싸는 것 같다. 도덕이 바탕이 돼야 공정도 있고 혁신도 있고 통합도 있다. 반성과 도덕이 없는 공정은 허구이고 기만이다.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지적처럼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 세울 수 있다”.
끝으로 문 대통령은 “보수적인 생각과 진보적인 생각이 조화를 이뤄야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준 ‘오기와 배제’의 리더십으론 불가능하다. ‘겸손과 관용’의 리더십으로 전환해야 한다. 겸손의 요체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관용은 상대방의 기능과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성찰해야 조화와 협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 반대로 대통령의 자화자찬과 아전인수, ‘내 책임’보다 ‘남 탓’을 하면 국론은 분열된다.
아무튼, 대통령의 이러한 시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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