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잣나무 향 가득한 가평
- 잣 묵사발·잣 칼국수
육수·면 반죽, 잣 갈아 만들어
부드러운 질감에 풍미도 가득
- 잣 모두부
두부에 송송 섞어넣은 ‘통 잣’
씹히는 맛에 고소함 어우러져
- 체질 맞춤 건강식
한의사가 진맥 후 정식 차려내
찐 생선·나물 자극적이지 않아
잣이 유명한 가평, 올가을도 어김없이 새로 수확한 고소한 잣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수분기 없이 바삭한 잣 껍데기를 손으로 벗겨내는 기분이 좋은 이 계절에 신선한 잣도 사고 잣으로 만든 음식도 즐기기 위해 가평을 방문했다. 햇빛 강렬한 주말 오전, 아침고요수목원 근처 가평군 상면 행현리에서 주말여행이 시작됐다.
가평은 잣으로 시작해 잣으로 끝난다. 그도 그럴 것이 가평 전체 임야 면적의 30%가 잣나무로 구성돼 있고, 유독 잣이 많이 생산되는 축령산 지역 수목원으로 향하는 행현리 오르막길에는 잣을 주인공으로 해서 잣과 관련된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목원으로 올라가는 언덕 중간에 있는 ‘채원’을 방문했다. 이른 점심시간, 벌써 경치 좋은 자리는 부지런한 방문객들이 차지한 후였다. 이곳에서 직접 만드는 ‘잣 모두부’와 ‘잣 두부전골’을 주문했다. 잣 모두부는 잣을 갈지 않고 통째로 섞어 넣어 두부를 만들었다. 두부에 작은 구멍이 송송 나 있고, 씹을 때마다 어김없이 박혀 있는 통잣이 함께 씹혔다. 모두부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과 중간중간 가볍게 사각 씹히는 고소한 잣의 조화가 좋았다. 이곳의 잣 두부전골은 표고버섯·팽이버섯 등 두 가지 버섯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담백하고 풍부한 맛의 채소 국물이 잘 어울린다. 특히 적은 수지만 함께 나온 깻잎 장아찌와 열무김치는 매우 신선했다.
해마다 이맘때, 이곳 행현리의 진풍경은 인근에 개발된 대규모 펜션 안의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다. 그들은 선베드에 누워서 따뜻한 햇볕을 쬐며 가을의 절정을 즐긴다. 조그만 이 동네가 수목원 때문에 유명해지더니 해마다 행현리 도로 양옆으로 하나둘씩 대규모 펜션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있던 토박이 주택과 새로 생긴 멋진 대규모 식당과 펜션들, 그리고 농사짓는 인근 주민들의 농산물 창고 건물들이 오밀조밀 함께 존재하며 발전하고 있다.
행현리에는 잣 채집, 가공 및 판매를 동시에 하는 창고형 판매장이 많이 있다. 그중 가장 규모도 크고 역사가 오래된 ‘가평잣작목반’을 찾았다. 이곳의 오명옥 대표를 만났다. “남편이 이곳에서 자랐어요. 어릴 때부터 잣을 채집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사업이 돼 ‘잣’ 인생을 살고 있지요.” 잣을 팔려면 채집 권리도 사야 하고 채집할 수 있는 다양한 대형 농기계도 갖춰야 하고 채집 이후 가공할 수 있는 작업장도 있어야 하는 등 생각보다 비용 투자가 많다는 설명도 들었다. 오 대표에게 잣을 어떻게 보관해야 좋은지 물었다. “냉동보다는 냉장이 좋습니다. 다만, 냉장고 특유의 냄새가 배거나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여러 겹 싸고 잘 밀봉하시면 됩니다.” 또한 껍질만 벗긴 ‘황잣’이 이를 가공한 ‘백잣’보다 훨씬 더 고소하다고 설명했다. 올해 수확한 햇잣뿐만 아니라 잣 막걸리, 잣 엿, 잣 누룽지 등 잣으로 만든 다양한 제품들이 구비돼 있었다. 잣 1㎏짜리를 몇 개 구매하며 당분간 맛있는 잣죽을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인근 임초리의 수목원과 연결되는 큰길에 최근 한의사가 개업했다는 ‘판미동’이라는 식당이 있다고 해서 궁금해져 방문해 보기로 했다. 조선 시대에 가난한 자가 오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아픈 사람들이 오면 무료로 진료했던 ‘판미동’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 식당의 주인장인 우호창 한의사는 “실제 ‘판미동’이란 곳이 이 지역에 있었다”며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로 판미동 윗동네라 ‘상판(리)’, 판미동 아랫동네라 ‘하판(리)’이라고 붙인 지역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판미동의 콘셉트는 ‘약식동원’과 ‘체질식’이다. 음식으로 못 고치면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주제로, 사람들에게 체질과 건강상태에 맞는 음식을 제안한다. 예약 후 방문하니 자리에 앉자마자 진맥부터 시작했다. 또한 음식이 나오는 동안 건강과 관련한 조언을 해 줬다. 최근에 한의사가 운영하는 전통찻집에 가서 한약재가 들어간 차를 마시며 한의원 진료를 함께 봤던 춘천 여행 때가 생각났다. 이곳은 병원과 음식점의 또 다른 형태의 크로스오버로, 한의사가 직접 식당을 운영하며 사람들에게 건강식에 대해 조언한다. 이곳의 음식은 유기농·친환경 재료를 우선으로 사용한다. 또한, 한의사인 자신의 업력으로 음식을 디자인해 주방장을 통해 구현했다. 소금은 7년 간수 뺀 소금을 사용하며 김치 대신 내는 깍두기에는 당근을 갈아 넣은 다음 ‘병어젓’으로 맛을 냈다. 대부분 재료는 농사짓는 분들과 관계를 구축해 종류별로 주문하며, 밥은 함평평야의 태평농법으로 농사지은 쌀로만 짓는다. 소양인이라고 진단받은 나는 쥐눈이콩, 쥐눈이콩으로 만든 간장, 후추 대신 필발을 넣어 음식을 즐길 것을 조언받았다. 음식은 생각보다 훨씬 정갈하고 종류도 다양했다. 방짜유기를 사용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음식의 간은 내가 좋아하는 심심한 정도였고, 맛을 추구하기보다는 체질에 맞는 재료 사용과 조리법에 중점을 뒀다. 생선구이 대신 생선찜을 제공했고, 보통 즐기는 김치 종류는 없었으며 회를 찍어 먹을 초고추장도 없었다. 더구나 삶은 돼지고기와 가지, 파래와 씀바귀, 메추리알 등은 평소에 내가 즐기는 찬은 아니었다. 회에 쥐눈이콩 간장과 후추 대신 즐길 필발을 넣으니 뾰족뾰족한 맛과 느낌이 독특했다. 식탁에 준비된 쥐눈이콩과 코코넛 식초의 조화가 궁금했다. “산수유 식초를 준비해야 하는데 가격을 맞추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성분이 비슷한 코코넛 식초를 쓰고 있어요.” ‘음식을 이기는 약은 없다’는 우호창 한의사의 선전을 기대하며 오래오래 운영하는 식당이 되길 기원했다. 그리고 건강한 이 음식을 내 가족과 꼭 다시 와 함께 먹고 싶다는 생각이 충분히 드는 음식이었다.
주말 일정 마지막으로 수목원에서 유명산 입구까지 달려 봤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서 약 50분 거리인데 청평댐과 유원지 단지를 지나 산을 넘어가다 보니 설악나들목까지 가게 됐다. 봄에는 벚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누룽지부터 엿까지 잣 별미 여기 있소
잣을 넣은 잣 모두부를 판매하는 ‘채원’(031-585-0104)은 가평군 상면 수목원로 206에 있다. 잣 두부전골 1만2000원, 잣 모두부 8000원. 잣 칼국수가 유명한 ‘유명산종점가든’(031-584-0716)은 설악면 유명산길 76에 있다. 진한 잣 향기 가득한 잣 묵밥 1만2000원, 잣 칼국수 1만 원, 잣 백숙 5만5000원, 잣 두부조림 20000원, 잣 600g 3만5000원.
가평의 질 좋은 잣을 구매할 수 있는 ‘가평잣작목반’(031-584-3666)은 상면 수목원로 101에 있다. 잣 1㎏ 6만6000원, 500g 3만3000원, 300g 2만 원. 잣 막걸리(잣 0.05% 함유) 3000원, 잣 엿 1000원, 잣 누룽지 5000원.
그 외 가평 잣을 구매할 수 있는 인근 오일장을 소개한다. ‘가평장’(5일·10일, 031-582-3002)은 가평읍 장터2길 10에, ‘설악장’(1일·6일, 031-584-7301)은 설악면 신천중앙로 104에, ‘청평장’(2일·7일, 031-580-2631)은 청평면 시장중앙로 19에, ‘현리장’(4일·9일, 031-580-4782)은 하면 현창로44번길 14에 각각 있다. 전통 장터에서는 대부분 가공 전 상태인 ‘피잣’이 많이 판매된다.
최근 임초리에 문을 연 체질 식단 전문식당 ‘판미동’(031-585-7557)은 상면 수목원로 2에 있다. 미리 증상과 사진을 보내주면 체질에 맞는 식사를 예약할 수 있다. 점심 정식 1만5000원, 예약 정식 2만5000원. 아침 죽 1만 원, 이화곡 막걸리 한 잔 3000원, 반 되 1만 원, 한 되 2만 원. 예약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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