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락하는 홍콩 경제

美, 비자 금지·자산 동결 압박
미국기업 1300여개 상주 부담
극단적 제재 조치는 일단 미뤄

VS

中 “인권 거론은 외세의 간섭”
외국자본 중국유입 주요 통로
2049년 ‘완전 흡수’ 차질 우려


홍콩 경제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화려했던 20년 전의 홍콩이 아니다. 홍콩은 중국 경제의 준마(駿馬) 역할을 했던 곳이다. 미국 하원을 통과한 ‘홍콩 인권 관련 3개 법안’(홍콩인권3법)이 실행에 옮겨질 경우 더 큰 치명타를 입게 된다. 홍콩시민들의 민주화 시위 양상이나 중국 정부, 자치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의 완고한 대응을 감안할 때 미국의 홍콩인권3법 시행은 정해진 수순이다. 홍콩인권3법은 미국 상원에서의 통과만을 앞두고 있다. 홍콩 경제의 부활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전망마저 나오는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홍콩 민주화 시위 때문에 경제가 더 추락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지만, 사실 홍콩 경제의 붕괴는 오래전부터 예고돼 왔다. 중국의 정책과 맞물린 홍콩 경제의 파탄이 민주화 시위의 원인이라는 게 시민들의 인식이다.

◇홍콩인권3법 가동 초읽기 = 만약 홍콩인권3법이 시행되면 미국은 매년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경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일각에서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홍콩의 고삐를 뺏어 쥐려 한다”는 분석을 내놨을 정도다. 미국이 홍콩의 정치와 경제를 멋대로 재단하게 된다는 것이 중국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배경이다.

홍콩은 2049년 중국의 특별행정구역에서 해제돼 완전히 본국에 합쳐진다. 그때까지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유지해야 하나 실상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위한 대통합 속도를 올리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홍콩인권3법은 이러한 야심 찬 계획에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고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미국은 1992년 미국·홍콩정책법을 제정해 홍콩의 중국 반환 후에도 무역이나 투자 등 분야에서 홍콩에 미국달러와 홍콩달러 자유교환 등의 특혜를 부여해 왔다. 그런 미국이 법안을 만들어 홍콩의 자치 수준을 매년 평가하고 그에 따라 홍콩에 부여한 경제 특수성을 박탈하겠다고 나섰다는 점에서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93년 홍콩 경제 규모는 중국의 4분의 1에 달했으나 이후 꾸준히 감소세를 보여 왔다. 2018년 기준 홍콩의 국내총생산(GDP)은 3640억 달러로 중국(13조6000억 달러)의 2.7%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중국은 홍콩이 누리는 경제 특권을 놓지 못하고 있다. 홍콩은 중국과 특수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철저한 자유시장경제 체제다. 홍콩을 통해 중국에 외국 자본이 유입되기도 했지만, 중국 경제가 외부로 이동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일례로 중국산 수입품은 홍콩을 거치면서 미국의 관세를 피해갈 수 있다. 중국 기업들도 홍콩의 덕을 본다.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높게 형성된 홍콩에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유치를 받는다. 지난해 중국 기업은 IPO로 642억 달러의 자금 마련에 성공했는데 이 중 홍콩에서의 비중이 절반 이상이었다. 또 홍콩은 세계 최대 규모의 위안화가 거래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 주요 2개국(G2)의 경쟁자인 미국이 홍콩 경제에 압박을 가하겠다고 하니 중국에는 큰 부담이다. 최근 미국 외에 영국도 홍콩 자치권에 대한 보호성을 주장하고 나선 점도 심상찮다. 미국의 선례로 국제사회가 발을 맞춰 홍콩 인권을 내걸고 경제 제재를 가할 경우 중국의 일국화 정책이 일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간 정치싸움 양상으로 비화 = 일부 외신은 이 같은 상황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정치 씨름이라고 분석한다. 당초 미국이 홍콩정책법을 제정한 이유도 중국의 공산주의 일원화를 막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많았다. 게다가 홍콩인권3법은 경제 제재에 대한 조건이 한층 더 노골적이다. 홍콩 자치 수준 평가를 넘어 중국 관리가 홍콩의 자치권을 탄압한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할 뿐 아니라 자산도 동결시킨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의회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면서 중국 지도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또 이번 홍콩인권3법이 미국과 중국, 그리고 중국의 특별행정구역인 홍콩의 관계를 뒤흔들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법안이 홍콩을 아시아 금융허브에서 그저 중국의 도시 중 하나로 바꿔 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미국도 극단적인 조치는 미루는 모양새다. 홍콩은 미국에도 비교적 안전한 중국 진출의 통로라는 점에서다. 실제 홍콩에는 1300개가 넘는 미국 기업이 상주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달 초 고위급 무역협상을 통해 ‘스몰딜’을 성사시켰다. 앞서 홍콩 시위 사태에 대해 “인도적인 해결책을 보고 싶다”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무역협상 직후 “홍콩 시위가 많이 누그러졌다”고 말하는 등 상황에 따라 달라진 입장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에는 중국과 진행 중인 무역협상 1단계 합의를 두고 “예정보다 앞서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법안 제정에 최종 사인을 하게 되는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무작정 중국과 정치 씨름에 돌입하기보다 중국의 반응을 보며 자국의 계산기부터 신중하게 두들기는 식이다.

중국은 홍콩인권3법을 ‘외세의 간섭’이라 못 박았다. 홍콩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는 이유다. 외교부 역시 하원의 통과에 대해 “강렬히 분개하며 단호하게 반격하겠다”는 완고한 입장을 발표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영토를 분열시키려 하면 몸이 부서지고 뼈는 가루가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하기도 했다. 미·중 간 무역전쟁이 본격적인 이념싸움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화려했던 홍콩의 과거 = 영국령 홍콩이 현재와 같은 특별행정구가 된 것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과 영국은 공동선언을 통해 1997년을 기준으로 홍콩을 중국에 반환키로 했다. 반환 이후 50년간은 일국양제를 유지하면서 특별행정구로 홍콩인의 통치를 보장토록 했다. 그러나 반환과 함께 중국은 ‘중국 속의 홍콩’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2003년 중국과 홍콩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체결하고 수년에 걸쳐 법률과 의료, 부동산, 은행 등 각종 서비스 분야를 개방해 나갔다. 최근에는 홍콩과 마카오, 광둥(廣東)성 9개 도시를 경제적으로 통합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강주아오 대교와 광저우(廣州)-홍콩 고속철 등 교통 인프라를 놓는 등 ‘일국경제’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1842년 아편전쟁에서 청(淸)이 영국에 패배해 난징(南京)조약을 맺으면서 홍콩은 영국령이 됐다. 이후 일본에 점령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1946년 다시 영국 직할 통치 지역으로 바뀌었다.

김온유 기자 kimon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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