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에 지난해 인수된 아파트 관리 앱 개발업체 ‘모빌’의 임직원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창업자인 서대규 대표다.  모빌 제공
카카오페이에 지난해 인수된 아파트 관리 앱 개발업체 ‘모빌’의 임직원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창업자인 서대규 대표다. 모빌 제공

대기업 등 기존 업체들이
자금 필요한 곳 지분 인수
‘인큐베이팅 시스템’정착

정부 차원 장기목표 세우고
지속적 투자해야 생존가능


경기 성남시 판교는 대한민국의 새 성장동력이 꿈틀대는 곳이다. 공장 굴뚝 하나 없는 이곳에는 1300여 개 첨단기업, 6만여 명의 정보기술(IT)·바이오(BT)·문화(CT)·나노기술(NT) 분야 인재가 한국판 실리콘밸리 신화를 꿈꾸며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지만, 판교에 있는 기업들은 기술력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미래를 바꾸려 하고 있다. 판교 입주 기업 총매출액은 79조3000억 원(2017년 기준)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지역 내 총생산(GRDP) 1위인 경기도(414조 원)의 20%에 근접한다.

판교의 성공 비결에 대해 ‘판교인’들은 신생 기업이 마음껏 꿈을 키우고 실현할 수 있는 인큐베이팅(Incubating) 시스템을 꼽는다. 인큐베이팅은 예비 스타트업이나 신생 스타트업에 필요한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자금력이 약한 스타트업의 지분을 인수해 성장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는 ‘이스라엘식 창업모델’이 유행이다. 이스라엘은 정부와 기업이 스타트업 펀드를 조성해 돕지만, 판교에서는 이미 성장한 기업들이 스타트업의 지분을 사들여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29일 판교 한 사무실에서 만난 서대규(31) 모빌(MOVILL) 대표는 지난해 12월 카카오페이에 회사 지분 대부분을 넘기면서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았다. 모빌은 고지서 간편결제와 전자투표, 계약서관리 등 아파트와 관련한 다양한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2014년 창업해 올 연말까지 약 600개 아파트가 이 회사 앱을 쓸 예정이다. 세종대 컴퓨터공학과 재학 중 아르바이트로 5000만 원을 모아 모빌을 같은 대학 선배와 창업한 서 대표는 “그동안 직원들 월급 주는 일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카카오페이라는 안정적인 울타리 안에서 연구·개발(R&D)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가 모빌 지분을 인수할 때만 해도 직원 수는 9명에 불과했지만, 1년 새 어느덧 26명으로 늘었다.

서 대표는 “우연히 어머니께서 아파트 내 서비스가 이용하기 불편하다고 말씀하는 걸 보고 아파트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해주는 앱을 개발하면 수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카카오페이의 도움으로 자금 문제는 물론, 카카오와 모빌의 플랫폼을 연계해 그간 하기 힘들었던 다양한 분야 진출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지분 등을 넘겼지만, 서 대표는 여전히 모빌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다. 카카오페이가 지분을 인수하면서 경영권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모빌은 ‘IT 기술을 통해 주거문화를 혁신한다’는 목표를 갖고 현재 홈(Home)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IT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새로운 상생모델이 만든 놀라운 결과물이다.

카카오와 모빌의 신개념 파트너십은 이제 막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아직도 스타트업 업계에선 정부 차원의 선진국형 스타트업 육성정책이 더 많이 도입돼야 한다고 호소한다. 실제로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프랑스 경제를 부활시킬 ‘비바 테크’(VIVA TECH)를 선언하면서 “프랑스를 스타트업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이를 위해 1000개가 넘는 신생기업이 입주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센터 ‘스테이션F’를 구축하고, 스타트업 투자용 창업혁신펀드를 1000억 유로(약 130조 원) 규모로 조성하는 등 파격적 정책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10여 년 전 싱가포르로 떠난 세계적 로봇 기업 ‘H3다이내믹스’의 유턴을 이끌어냈다.

미국은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동안 ‘스타트업 아메리카’를 천명한 결과, 1400만 개의 고용이 창출됐다. 영국도 2010년 런던에 ‘테크시티’를 조성, 핀테크 등 IT 기업이 유치한 투자금액이 2012∼2016년 138억 달러(유럽 1위·약 16조1170억 원)에 이르며, 영국 내 디지털 관련 일자리만 164만 개를 창출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판교 IT 관계자는 “일본은 4차 산업혁명 종합전략인 재흥 전략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며 “다른 국가처럼 우리도 기업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장기적 목표와 더 큰 투자가 뒷받침돼야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해완·김윤림 기자 paras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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