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은 여성에 대한 전쟁을 멈출 수 있다 / 마이클 코프먼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美 중산층 백인 남성 저자
차분한 어조로 性평등 호소

여성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임금 격차·가사노동 편중 등
여전한 불평등 눈에 들어와

요즘은 남자들이 지고 있다?
이런 인식도 남성우선 관념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우리 사회의 젠더 평등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많은 이의 공감을 얻으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영화의 내용이 과도한 페미니즘을 담고 있어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책은 그런 불편함을 느낀 이들이 읽어볼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남성이 성 평등을 실천하려 애쓰고 있음에도 여전히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 여성 문제가 여성만이 아니라 남녀 모두가 풀어야 할 과제인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그 설명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남성 페미니스트인 저자가 세계 각국에서 경험한 사례, 인류학적 고찰, 각종 경제적 수치들이다.

저자 마이클 코프먼은 미국에서 태어나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학위를 받은 정치학 박사로, 여권 운동을 하는 화이트 리본 캠페인(White Ribbon Campaign) 공동설립자이다. 저자가 이 캠페인에 나선 것은 1989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페미니즘에 분노한 남성에 의해 여대생 14명이 살해된 사건 때문이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고 성 평등을 진전시키기 위해 남성들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

이 책은 그 지지와 연대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저자 스스로 언급한 것처럼 그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백인 중산층 남성 이성애자이다. 저자가 남성이라는 조건은 여성 페미니스트의 딜레마를 넘어서게 한다는 것이 역자 이다희 씨의 시각이다. 이 씨가 쓴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여성 페미니스트는 성차별적 발언에 흥분해 날 선 말들을 쏟아내기 십상이다. 그동안 겪은 다양한 차별의 경험을 몸에 새기고 있는 탓이다. 난폭하게 을러대기보다 은근하고 끈덕지게 말하는 방식이 상대의 마음을 돌려놓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지만, 조곤조곤 설파하라는 요구는 그동안 여성이 강요받았던 전형적 여성성을 강화하라는 것이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딜레마에 처하는 것이다.

저자 코프먼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조곤조곤 설명한다. 자신이 파키스탄 등에서 겪은 일을 예로 들며 세상을 좀 더 평등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실천하고 있는 남성이 많아졌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남성들은 일단 귀를 열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성이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젠더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무엇을 알게 될까. 여성과 남성 사이의 소득 격차, 저소득 직종으로의 여성 쏠림 현상, 조직 내 여성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을 다시 살피게 된다. 수많은 여성이 경험하는 신체적·정서적 폭력, 맞벌이지만 가사와 육아에 할애하는 남녀 시간 차이, 질 높은 육아 서비스와 육아 휴가 부재 등을 직시하게 된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점차 해소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남녀 임금 격차가 1979년 통계에선 38%였으나 2016년 현재 18%로 줄어든 것이 그 보기다.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추세다. 그러나 격차 감소 속도가 근년에 급격히 느려지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성차별적 고용 형태도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장벽이 있다. 2016년 맥킨지앤컴퍼니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신입사원 남녀 비율은 46대 54인 데 비해 최고 경영자급의 비율은 19대 81이다. 한국은 2018년 매출액 500대 기업 중 여성 임원 비율이 3.6%였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남성들은 자신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편히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폭력을 당할까 두려워 밤에 공원이나 도서관에 가는 게 꺼려진 적이 있거나, 나를 더듬는 사람을 밀쳐낸 적이 있거나, 누가 내 외모를 칭찬하며 추근대거나 무작정 쫓아와서 두려웠던 적이 있는가.

코프먼은 이 세상의 남성이 육아의 절반을 분담하는 세상으로 꾸준히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82년생 김지영’이 극명하게 보여주듯, 여성에게 편중된 육아 책임이 결국 여성의 경제적 이득과 사회적 위상을 현저히 떨어트리는 탓이다. 육아휴직 등을 법적으로 제도화할 뿐 아니라 기업 등 조직에서 그것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 이전에 남성들 스스로 육아가 자신에게도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육아를 분담한 아버지들이 이전보다 더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받고, 새로운 공감 능력을 얻어 세상과 더 넓고 깊게 소통하는 사람이 된다는 점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남성들이 가부장적 세계에서 누려온 특권을 놓기란 쉽지 않다고 인정한다. 일부 남성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에도 고개를 끄덕거린다. “예전에는 불평등했다는 것을 인정할게요. 하지만 이제 모든 혜택이 여자들한테 가고 남자들은 계속 지고만 있어요.”

그러나 이 ‘지고만 있다’는 인식 자체가 남성 우선 할당제의 유습에서 비롯된 관념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갑자기 여성과 자원을 동등하게 나누거나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손해라고 여기는 무의식이 작동한다는 것.

독자에 따라서는 저자의 이런 생각들에 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남성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이 퍽 유익할 것이다. ‘나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이들도. 284쪽, 1만80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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