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치 64년 경력의 피아노 조율사 이종렬(81). 이 책은 대한민국 조율 명장 1호인 그가 쓴, 조율사와 관련한 거의 모든 이야기다.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 수석조율사로 일하고 있는 현역이다. 국내 대표적 공연장에서 그가 피아노를 조율한 횟수만 4만1000회. 매일 한 번 조율을 했다고 치면, 자그마치 112년이 넘는다.
1956년부터 조율로 보낸 저자의 한평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그의 자서전적 기록이다. 독학으로 조율을 익히고, 조율을 직업으로 택하고, 지금껏 일해온 과정을 담박하게 담았다. 저자가 시골 교회 풍금을 만나 음악에 눈을 뜨게 된 건 고교 3학년 때. 음악에 대한 끓는 열정으로 풍금의 화음을 맞추다가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는 조율을 처음 시작했다. 일본어를 한 자도 모르면서 일본인 저자가 쓴 조율 책을 사서 독학으로 조율을 배우던 에피소드부터 피아노 공장에 취직해 일하고, 공연장에서 조율을 맡기까지의 이야기들을 군더더기 없이 담아냈다. 저자의 담담한 회고가 의미 있게 들리는 건, 열정이 삶의 행로를 어떻게 이끌고 가는지를 보편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책의 두 번째 부분은 그가 조율을 하면서 만나게 된 세계적인 연주자들과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이 대목에서 새삼 알게 되는 건 조율이란 단순히 악기의 소리를 고르는 것을 넘어 피아니스트들이 저마다 원하는 다른 소리를 피아노에서 끌어내는 작업이라는 것. 연주자들이 보여주는 최상의 퍼포먼스 뒤에는 훌륭한 조율사가 있다.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는 다양하다. 피아노 연주 중 끊임없이 보습로션을 바르는 피아니스트가 있는가 하면,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연주하겠다고 고집한 피아니스트도 있고, 내한을 앞두고 피아노 건반 하나의 무게를 알려 달라고 요구한 까다로운 연주자도 있다. 세계적인 거장이 칭찬해 마지않는 피아노를, 국내 연주가가 ‘형편없다’며 타박했다는 얘기도 재미있다.
책의 세 번째, 마지막 부분은 조율에 대한 개념이나 방법 등에 관한 이야기다. 짤막짤막하게 이야기를 재단하고 풍성한 사례 등을 끼워 넣어서 음악에 크게 관심이 없는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조율이란 행위 자체가 단순히 악기의 음을 조정하는 차원을 넘어서, 삶의 중심을 잡아 나간다는 은유나 상징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평생 한 가지 일만을 꿋꿋하게 해 온 장인의 향기와 자부심이 느껴진다. 291쪽, 1만4800원.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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