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가치 위해 작은 가치에는 눈감을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 사고에 경종
공정이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과 사퇴, 그리고 그를 둘러싼 검찰 수사와 여야 진실 공방을 지켜보면서 온 국민이 ‘공정 열병’을 앓고 있다. 진보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공정성 화두는 보수의 공유 가치로까지 확산했다. 공정성 문제가 지식사회를 넘어 시민사회의 보편적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된 것도 조국 사태의 영향이다. ‘조국의 부침(浮沈)’은 그것이 공정성의 진전을 위한 역사 발전의 도구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지만 ‘이성의 간지(奸智)’ 역할을 톡톡히 했다.
존 롤스의 ‘정의론’이 등장한 이후 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공정이 ‘평등한 자유’의 원칙과 ‘기회의 평등’ 원칙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공동체 속에서 낙오된 구성원들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자, 어떤 종류의 반칙과 특권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집권층 내부의 타락을 보여준 조국 사태가 그간 공정성을 독점해온 정권의 배신으로까지 읽히는 이유다.
20∼30대 젊은층이 촛불 정권을 자임한 집권세력의 특권과 반칙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청년들이 분노했고 그 부모들이 공감하면서, 세대를 넘고 보수와 진보를 넘어 공정사회를 향한 도도한 물결이 형성됐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가 문화일보 창간 기획 대담에서 “우리 사회의 공정성 담론을 2030세대가 주도했다”고 한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조국 사태가 ‘드라마틱’했던 이유는 공정 혹은 정의의 가치를 지식사회와 대학과 청와대의 최전선에서 선전해왔던 문재인 정부의 상징적 인물인 조 전 장관이 그 가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불공정 행태를 자행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조국 사태는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 희망에 균열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교육 불공정 사건이었고, 흙수저 가정환경에서는 흉내조차 내지 못할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동원했다는 점에서 사회·경제적 불공정 사건이었으며, 촛불정신을 계승했다는 정권의 비도덕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좌파의 반칙과 편법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진보 경제학자인 주병기 서울대 교수도 창간 대담에서 “조국 사태를 계기로 ‘운동권 좌파는 과연 양심적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386 운동권 출신의 ‘개혁 패러다임’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평가와 이들이 떠받치는 정권의 정당성 자체가 근본적인 도전을 받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큰 가치를 위해 작은 가치에는 눈감을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가져다줄 수 있는 무서운 결과에도 경종이 울렸다.
조국 사태 이후로도 공정성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국민이 체감하는 공정의 가치나 해법은 정권이 구상하고 추진하는 그것과 많이 달라 보인다. 국민의 절대다수는 공정성 실패가 ‘울분 사회’를 넘어 ‘남미형 사회’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데, 문재인 정권은 조국 사태를 제도의 문제로만 돌리며 대입 정시 확대, 검찰개혁, 언론개혁의 이름으로 ‘공정 몰이’에 몰두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미완의 공정성 프로젝트’라는 시대적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허민 전임기자 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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