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못지킨 정부에 신뢰 저하
‘조국사태’로 공정 가치 무너져
무당층 46%로 국민 절반 육박
사회 전반 ‘정치혐오’뿌리내려
결국은‘만성 갈등사회’로 진입
공정(公正·fairness) 가치가 허물어진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가장 기본적인 공정 가치인 ‘기회의 평등’마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사회 내 불신이 극도로 커진다.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배경과 연줄의 힘에서 찾으려 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성과를 깎아내리기 바빠진다. 구성원 간 심리적 양극화와 상대적 박탈감이 커져 ‘계층 간 불신’ 현상도 나타난다. 동시에 공정의 가치를 지키지 못한 정부에 대한 신뢰가 급감하고 국회 불신 현상도 커져 ‘정치 혐오’ 현상도 뚜렷해진다.
‘조국 사태’는 공정 가치의 붕괴로 인한 이 같은 부작용을 두 달 반 동안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학계에서는 정부나 국회가 ‘조국 정국’을 거치며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을 바로 잡지 못하면, 갈등이 만성화된 ‘갈등 사회’로 본격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조국 사태’가 초래한 불신 = 31일 학계에 따르면, 불신의 해악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특히, 불신의 감정이 불공정성과 결합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상호 불신이 깊이 뿌리내린 불신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게 된다. 아직도 진행형인 조국 사태를 생각해보면 쉽다. 조국 사태로 진영 간 갈등이 격해지고, 국민이 분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초동 집회와 광화문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자기 확신을 넘어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보이고 있다. 특히, 조국 사태를 통해 청년 세대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커지며 사회 불신의 감정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어떠한 명분을 바탕으로 누군가의 기회의 평등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보인다. 더구나 권력 유지 목적 등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포장하고, 권력을 재생산하려는 현 집권층에 대해 큰 거부감을 보이는 젊은 층이 많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층은 반칙, 특권, 변칙을 극도로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공정 가치가 허물어지면, 젊은 층의 사회 불신 현상이 빠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 구성원의 ‘울분’도 커지고 있다. 울분 개념은 통일 후 동독인들이 겪는 심리 문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2003년에는 ‘외상 후 울분장애’라는 진단명도 생겼다. 실제 유명순 서울대 교수의 ‘한국의 울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인의 10.7%가 ‘심한 울분’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적 울분’을 느끼는 사람(32.8%)을 포함하면, 43.5%가 ‘만성적 울분 감정’을 겪고 있었다. 유 교수팀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일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아 생기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정부 신뢰 저하 =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고 사회 내 불공정이 크다고 인식하면, 정부 신뢰는 크게 저하된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의 ‘정부 신뢰 무엇이 문제인가. 공정성에 대한 인식과 정부 신뢰’ 연구에서 이 같은 점이 확인된다. 이 교수는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를 활용해 정부 신뢰와 공정성 인식 사이의 관계 등을 분석한 결과, 시민들이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다고 생각할수록 중앙 정부에 대해 높은 신뢰를 보이는 점이 나타났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공정성에 대한 인식 중에서도, 사회 내에서 ‘기회의 평등’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정부에 대한 신뢰 수준에 매우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조국 정국을 지나며 ‘무당층’이 증가하는 현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 10월 초 46.5%(한길리서치)에 이르는 등 무당층 비율이 40∼5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조국 사태를 겪으며 △기성 정당에 대한 신뢰 저하 △국민 분열을 확대하는 정부에 대한 실망 △광장정치인 직접민주주의 선호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아울러 조국 정국에도 무당층이 야당인 자유한국당 지지로 돌아서지 않는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정부도, 정당도 믿을 수 없다’ ‘각개전투만이 해법이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고, 사회 전반에 정치 혐오 현상이 뿌리내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극우정당 지지율 상승 = 불공정성에 기반한 불신 강화, 정부·기존 정당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면, 국민이 극우정당에 지지를 보내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계층 간에는 불신이 뿌리내린다. 일례로, 반(反)난민 정서를 자극하며 등장한 독일의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대안당)’은 2013년 창당 당시에는 소수정당이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현재 대안당은 연방하원과 지방 의회까지 진입한 제3당으로 급성장했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겪는 옛 동독인들은 대안당 등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 현재 독일에서는 심심찮게 극우 세력의 반(反)난민 시위나 ‘친(親)나치’ 시위도 벌어진다. 이를 두고,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은 통제 불가능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국민의 심리상태가 급진화된 생각과 행동으로 표출되고, 이를 표방하는 극우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커지는 갈등 비용 = 갈등이 일상화되는 갈등 사회로 진입하게 되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갈등지수와 갈등비용 추정’ 보고서를 보면, 사회적 갈등은 경제 발전(1인당 국민소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연구원의 박준 부연구위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에 대한 3개년(2005, 2010, 2015년)의 사회갈등지수와 1인당 국민소득 간 관계를 조사한 결과, 이 같은 경향성이 분석됐다. 민간 연구소들도 같은 결론을 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1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최대 246조 원에 달한다. 갈등만 잘 추슬러도 1인당 국민소득(국내총생산(GDP) 기준)이 7∼21% 증가한다는 분석이다. 현대경제연구원도 2016년 비슷한 내용의 자료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면, 경제성장률이 연 0.2%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손기은 기자, 최근주·정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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