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의 합작 투자는 일본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애써 TV·라디오 국산 기술을 여기까지 끌어올렸는데 지금 일본 기술과 자본을 도입한다면 국내 기술은 설 땅을 잃게 된다. 삼성의 합작 투자를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
설탕과 모직사업을 하던 삼성이 1969년 사업영역을 전자업종으로 확대하려 하자 당시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 소속 59개 업체가 똘똘 뭉쳐 반대하면서 내놓은 대정부 건의서 내용 중 일부다. 전자를 성장산업으로 본 삼성이 단기간 기술습득을 위해 당시 굴지의 일본 산요전기와 합작해 시장 진출을 꾀하자 국내 업체들이 ‘민족자본을 타파하려는 매판적 행위’라고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생산품의 85%를 수출하겠다는 합작 조건은 당시 박정희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맞아떨어져 삼성은 천신만고 끝에 전자산업 진출 길을 열 수 있었다. 꼭 50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현재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홍보관에 전시돼 있는 삼성의 첫 TV ‘P-3202’에 삼성 마크 대신 산요 상표가 붙어 있는 걸 보면 당시 삼성전자는 산요의 하청업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실제로 당시 기술 이전을 미루면서 값싼 한국의 노동력만 이용하려 한 산요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기술 독립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는 호암(湖巖)의 소회가 삼성 사사(社史) 곳곳에 담겨 있다.
이후 반도체에 진출한 삼성전자가 1994년 일본 기술력을 넘어 세계 최초로 256MD램 개발에 성공한 사실을 경술국치일인 8월 29일에 맞춰 발표한 걸 보면, ‘극일(克日)’을 향한 삼성의 집념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당시 삼성전자를 지도했던 산요는 조각조각 팔리며 공중분해 됐는데, 하청업체 취급받던 삼성전자는 연매출 240조 원이 넘는 글로벌 리더 기업으로 성장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삼성전자가 1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반세기를 견뎠다는 남다른 의미에도 불구하고 조촐한 행사로 대체했다고 한다. 요즘 삼성전자를 둘러싼 안팎의 시련 때문인 것 같다. 반도체 업황 악화 속에 한·일 외교마찰로 반도체 소재·부품 불확실성이 커졌고, 최근 시작된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은 리더십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하는데, 현시점에서 ‘삼성전자 50년’은 한국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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