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법무부의 훈령이 적용됐다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아마 묻혔을 겁니다.”
중앙일보 기자 시절인 지난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특종 보도한 신성호(사진)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법무부가 지난 30일 피의사실 공표 금지, 검사와 검찰 수사관의 기자 접촉 금지 등을 담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훈령)’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법무부의 훈령이 “헌법적 가치인 언론·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침해 소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당시 이홍규 대검찰청 공안4과장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경찰 큰일 났어” 라는 말을 듣고 취재를 시작해 군부정권 반대시위에 참여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인 박모 씨가 경찰 조사를 받다 사망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다. 특종 발굴의 시작점이 된 공안부 검사 취재였다. 법무부가 제정한 현재의 훈령처럼 기자의 검사 대면접촉이 금지됐었다면 취재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 교수는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고, 이후 동아일보 등 언론사는 박 씨의 조사 과정에서 경찰의 폭행과 물고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후속 보도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전두환 군부독재 종식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룩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으며, 공권력의 인권 침해에 대한 언론의 권력 감시의 대표 사례로 역사에 남아 있다.
신 교수는 민주화 이전인 1987년 상황을 회고하면서 “5공화국 당시에는 언론의 자유가 제한받던 시기였으나 검사를 비롯한 취재원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다”며 “대형 수사가 진행 중일 경우 일부 조사실 구간을 통제해 기자들 진입을 차단하긴 했지만 물리적으로 막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기자의 기본취재 방식인 면대면 접촉을 통한 취재의 중요성을 강조해 검사와 기자의 접촉을 금지한 법무부 훈령의 내용을 비판했다.
신 교수는 인권침해 오보 시 검찰 출입 제한 조치와 관련해서도 “10개의 팩트(fact) 중에서 1~2개가 오보이면 그런 내용도 오보로 볼 것이냐” 며 “오보의 기준과 한계가 무엇인지 애매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을 보도할 때 피의자나 참고인들의 검찰 소환·조사 등에서 인권 침해 소지가 있었다는 점은 언론사들도 인식하고 개선해야 하지만 자칫 법무부나 검찰이 (보도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논란이 커지자 “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오보가 명백하게 실제로 존재해야 검토 가능하다”며 “조치 여부 판단 주체는 각급 검찰청의 장이며 의무사항이 아닌 재량 사항”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30여 개 언론사 법조팀장들은 1일 오후 김오수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을 방문해 훈령 제정의 절차·내용상 문제 등을 담은 항의 의견을 전달하기로 했다. 전날 한국기자협회도 성명서를 발표해 “법무부의 이번 훈령이 시행되면 수사기관에 대한 언론의 감시 기능은 크게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정권에 불리한 수사가 진행될 경우 밖으로 못 새어나가게 막으려고 조선총독부 수준의 일을 벌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지영 기자 goodyoung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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