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역사학자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달 초 ‘일제 조선토지조사사업 수탈성의 진실’(나남)이라는 제목의 200쪽 남짓한 책을 펴냈다. 신 명예교수는 역사학의 김용섭, 국문학의 김윤식 등과 함께 ‘한국학 1세대’로 말해지는 학자다. 이들 세대 학자는 6·25전쟁 직후 서울대를 다니면서 식민지 사관의 학문적 극복을 일생일대의 과업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젊은 시절 신용하에게는 일제의 조선토지조사사업 연구가 딛고 넘어서야 할 과제였다. 일제의 수탈을 제도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1979년 펴낸 ‘조선토지조사사업연구’(한국연구원)는 한국 사학계가 식민지 사관을 벗는 데 결정적 저작으로 평가된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방대하고 철저한 실증연구로 한국사 연구와 교육에 ‘식민지수탈론’을 뿌리내리게 한 주인공이다.

이번에 ‘일제 조선토지조사사업 수탈성의 진실’이란 소책자를 다시 낸 것은 지난 7월 식민지근대화론자인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등이 ‘반일 종족주의’란 책을 펴낸 게 이유가 됐다. 우리 민족주의를 원시적 ‘종족주의’라 비하하고, 일제강점기의 토지수탈, 강제징용, 위안부 착취 등은 모두 이런 종족주의에 편승해 만들어낸 ‘가짜 역사’라고 주장하는 이 책은 노이즈마케팅의 효과를 보면서 베스트셀러 1위에 2주간 오르기도 했다. 신 명예교수는 “최근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나의 토지조사사업 연구를 폄훼하고 역사를 왜곡해 국민을 현혹시키는 데 맞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자 그간의 연구성과를 다시 정리했다”고 밝혔다. 그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조선토지조사사업이 한국에 근대적 토지제도를 확립시킨 획기적 정책이라고 말하지만, 당시 농민들의 실제 ‘삶’은 점점 비참해졌다”며 “그들이 말하는 ‘근대화’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

정치학자로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 등 정치철학은 물론 ‘갑오왜란과 아관망명’ 등 근대사 연구에도 조예가 깊은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최근 후학들과 함께 ‘일제 종족주의’(넥센미디어)를 출간했다. 구한말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 선생 집안의 후손인 황 교수 역시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의 ‘반일 종족주의’에 분노해 본인을 포함한 6명을 규합해 이번 책을 냈다. 황 교수는 “외국에 붙어서 외국문화를 칭송하며 우리나라를 깔보는 자들을 신채호는 ‘부외노(附外奴)’라고 불렀다”며, “우리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비하하는 식민지근대화론자에 대해 이것을 본떠서 부왜역적들을 ‘부왜노(附倭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밝힌다. 황 교수는 “일제종족주의 및 일제식민통치 옹호, 한국민족주의의 폄하, 징병·징용자와 위안부들에 대한 제2차 만행 등 부왜노들의 반인도·반국가행위에 분기탱천한 국민은 이들의 일제종족주의적 궤변과 괴설을 쳐부술 명쾌한 반론과 통쾌한 논박을 아쉬워하고 있다”며 이 책을 서둘러 펴낸 이유를 말한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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