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한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정치학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는 ‘중임(重任) 저주(second-term curse)’라는 말이 있다. 194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통령 3선 금지의 관례를 깨자, 건국 초기에 3선 금지를 관례화시킨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망령이 두 번째 임기의 대통령에게 3선을 아예 꿈도 못 꾸게 저주를 내린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경제 성적표를 보면, 초임 때보다 대부분 못했다. 연임 때는 경제뿐 아니라 인사 문제, 의회 관계, 대외 협상 등에서도 어려움을 더 겪은 것으로 정리된다.

4년 중임이 가능한 미국 대통령제의 ‘중임 저주’ 현상을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국에서 찾는다면, 이는 대통령 ‘임기 후반의 저주’라 할 수 있다. 1987년 현행 헌법이 도입된 이래 대통령 임기 전반 및 후반의 직무수행 지지도를 한국갤럽의 조사 자료로 비교해 보면, 노태우 37 대 18, 김영삼 55 대 24, 김대중 55 대 31, 노무현 33 대 22, 이명박 37 대 34, 박근혜 47 대 33이었다. 한국 대통령은 ‘임기 후반의 저주’를 피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임기 후반의 위기는 피한다기보다 잘 관리한다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임기 절반을 넘긴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임기 후반의 위기관리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임기 후반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그저께 수석보좌관회의의 문 대통령 모두발언에 다 담겨 있다. “앞으로 남은 절반의 임기, 국민께 더 낮고 더 가까이 다가가겠습니다. 국민의 격려와 질책 모두 귀 기울이며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혁신·포용·공정·평화의 길을 흔들림 없이 달려가겠습니다.”

그런데 임기 후반의 위기는 혁신·포용·공정·평화 등 4대 국정 기조의 길에서 증폭될 소지가 크다. 이 4대 국정 기조의 방법론에 심각한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전반기에 뿌린 씨와 키운 싹을 임기 후반기에 꽃 피우고 열매 맺도록 하겠으며, 4대 국정 기조의 길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포용·공정·평화의 길을 대통령과 다르게 생각하는 국민은 임기 전반기의 길을 다시 일관되게 달려가겠다는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임기 전반기에 뿌린 씨 가운데 잘못된 것은 거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임기 전반기의 길을 일관되게 달려가겠다는 대통령의 태도는 4대 국정 기조 중 하나인 포용과도 모순된다. 대통령의 표현대로 “심각한 양극화와 불평등이 해소되고, 따뜻하고 안전한 사회”가 되려면 불평등뿐 아니라 진영 간 대립의 양극화도 해소돼야 한다. 또한, “더욱 폭넓게 소통하고, 다른 의견들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면서 공감을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그런 소통이 가능한 청와대 참모진이 구성돼야 한다. 또, 4대 국정 기조 중 하나인 평화는 결코 안보와 반대되는 게 아니며 함께 추진돼야 하는 가치다.

임기 후반의 위기와 가장 밀접한 4대 국정 기조는 공정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제도 안에 숨겨진 특권과 불공정 요소까지 바로잡아 누구나 공평한 기회와 과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이른바 ‘내로남불’을 극복해야 한다. 어떤 행동이냐가 아니라 누구의 행동이냐에 따라 지지/비난(처벌)이 결정되는 내로남불은 국가 관리는 물론 정권 운영에서도 치명적으로 작동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진영·코드·연고·간판이 아닌 능력에 따라 인사를 충원해야 한다. 무능하면서도 오만한 인사를 유능한 인사로 바꿔야 한다.

진정한 포용·공정·평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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