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영화에 끌려 또다른 도전
양념 빼고 담백하게 만든 작품
스크린·드라마 넘나드는 도전
내가 후배들에 디딤돌 됐으면
“이 나이에 멜로 주인공하고, 화장품 모델을 할 수 있는 비결요? 몸뿐 아니라 정신의 근력도 필요한 것 같아요.”
14일 개봉한 영화 ‘윤희에게’의 주연배우로 만난 김희애(52)는 “건강을 유지하고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정유미 주연의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손익분기점(약 160만 명)을 넘어 330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충무로엔 여배우 설 자리가 많지 않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100만 관객을 넘긴 27편 가운데 여성 캐릭터가 이끄는 작품은 ‘82년생 김지영’ ‘걸캅스’ ‘항거: 유관순 이야기’ 등 3편에 불과하다. 따라서 과거의 비밀스러운 첫사랑의 감정을 다룬 퀴어 영화 ‘윤희에게’는 김희애로선 또 다른 도전이었을 것이다.
“아무 자극적인 게 없이 순수하게 만들어진 것 같아서 굉장히 좋았어요. 하지만 이걸 보시는 분들은 어떨지 궁금했죠. 흥행이 작품의 결과라면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만큼 배우 생활했으면 이런 도전도 해봐야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다룬 것이고 다른 종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평단의 반응이 좋은 것 같아 안심하고 있어요.”
‘윤희에게’는 매우 심심한 영화다. 간장도 고추장도 풀어 넣지 않은 맑은국처럼 담백하다. 은은함과 애틋함에 공감하는 관객들은 만족스러울 것이고, 맵고 짠맛에 빠진 관객들은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김희애의 변신엔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1983년 데뷔한 김희애는 지난 36년간 줄곧 톱스타 자리를 지켰다. 40∼50대가 되면 ‘여배우’에서 누군가의 ‘엄마’로 역할을 바꾸는 여느 여배우들과 달리 더욱 기막힌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2012)과 ‘밀회’(2014) 등이다. 특히 ‘아내의 자격’에서 김희애는 가정주부지만 뭔가에 홀리듯 격정적 사랑에 빠지는 인물을 뻔하지 않게 소화했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그 인물로 ‘빙의’되는 타고난 감각으로 불륜 드라마를 중년의 로맨스로 승화시켰다.
스크린에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사라진 밤’과 ‘허스토리’(이상 2018)는 김희애의 변신 욕구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섬뜩한 스릴러의 여주인공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경상도 사투리의 여행사 사장까지 안 쓰던 근육을 많이 썼다.
“작품 선택의 기준은 물론 그 작품이죠. 그런데 다행히 제가 한 캐릭터의 존재감이 드러나서 캐릭터 쪽으로 더 부각된 것 같아요. 할리우드 배우들도 나이 들면 힘들어 하는데 저는 운이 좋은 거죠. 일을 계속해서 건강한 건지, 건강을 지켜서 일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멈추지 않고 한다는 겁니다. 정신에도 근력이 있다면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후배들에게 제가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김희애는 내년에도 도전을 이어간다. 내년 초 방송 예정인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출연한다. “이 드라마도 기대가 돼요. 연기 오래 하길 참 다행이에요. 스태프 모두 열심이신데 저도 한 단계 더 발전해야죠.”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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