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은 해설위원이 지난 10일 KLPGA투어 시즌 최종전 ADT캡스챔피언십이 열린 충남 천안 우정힐스 골프장에서 중계방송에 앞서 클럽하우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준석 사진 작가 제공
박지은 해설위원이 지난 10일 KLPGA투어 시즌 최종전 ADT캡스챔피언십이 열린 충남 천안 우정힐스 골프장에서 중계방송에 앞서 클럽하우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박준석 사진 작가 제공
■ 박지은 SBS 골프해설위원

어린 시절 ‘연습벌레’로 유명
110개 대회 출전해 무려 55승
‘그레이스 박’ 이름으로 美 평정

맹훈련탓 프로 데뷔 첫해 부상
11개 대회나 쉬어 신인왕 놓쳐
허리 아파 침대 아닌 바닥서 자
안타까워하던 부모님 은퇴 권유
LPGA 1세대중 가장 먼저 떠나


박지은(40) SBS골프 해설위원은 “지금도 무엇을 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면서 “결코 골프를 떠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달 21일 부친 박수남 씨가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삼원가든 옆 한 커피숍에서 박지은 위원을 만났다. 박 위원은 2012년 은퇴 후 결혼했다. 지금은 5세, 3세인 두 딸아이 육아에 전념하고 가끔 골프 중계 해설을 맡고 있다. 2015년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해설위원으로 처음 나간 뒤 올해엔 7개 대회 해설을 맡았다. 얼마 전 한 케이블방송에 출연, 예능프로그램 ‘스윙키즈’를 촬영했다. 방송에서 과자를 물고 스윙하는 장면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박 위원이 고안해낸 이 연습법은 힘을 빼고 스윙을 하기 위한 맞춤 레슨이었다. 그는 “주말골퍼들이 과자를 물고 스윙하면 대부분 과자가 부서질 것”이라며 “특히 공을 더 멀리 치려면 힘을 빼야 하는데 이 방법이 꽤 효과가 있다”고 귀띔했다.

박 위원은 방송 후 출연했던 아이들에게 무엇을 하든 ‘천천히 가라’고 주문했다. 그는 아마추어 때 110개 대회에 나가 절반인 55승을 거뒀고, 86개 대회에서는 3위 안에 들었다. 미국에서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였다. 그는 “20세 전에 이렇게 잘 쳤지만, 프로에서는 정작 6승밖에 못했다”면서 “프로 이후가 중요하기에 (나처럼) 10대 때 힘을 다 쏟을 게 아니라 천천히 가고 20대 이후로 초점을 맞춰야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 위원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했다고 자부했다. ‘골프여제’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가장 두려워했던 선수가 그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두고 ‘게으른 천재’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며 색안경을 끼고 봤다. ‘그레이스 박’이란 이름 때문에 교포 취급도 받았다. 세계랭킹 2위까지 오르자 좀 더 잘 치기 위해 몸에 무리가 왔는데도 관리하지 못하고 출장을 강행했던 게 독이 됐다. 몸이 아픈 이후 연습 한번 안 하고 출전한 적도 많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박 위원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연습벌레’였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 아버지와 함께 미국 하와이로 유학을 갔던 게 골프 선수가 된 계기.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김소영 프로가 때마침 동계훈련을 위해 하와이로 오면서 골프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120타를 치던 실력이 한 달 만에 90타로 발전했다. 이후 무작정 주니어대회에 나갔다. 중학생이 되면서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났다. ‘그레이스 박’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주니어골프를 평정하는 사이, 박세리와 김미현이 한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성공을 거뒀다. 아마추어로서 더는 이룰 게 없었던 그는 애리조나주립대 2학년을 마치고 2000년 프로로 전향했다. LPGA투어가 1999년부터 2부 상금 3위까지 정규투어 출전권을 주는 새 제도를 시행한 것도 그의 프로행을 앞당겼다. 2부에 그해 가을 9개 대회를 남겨 놓고 합류했지만 5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상금 1위로 이듬해 LPGA투어 시드를 받았다. 그리고 2000년 데뷔 첫해 1승을 거둔 뒤 매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4년엔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챔피언십(현 ANA챔피언십)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우승했고 가을에 CJ나인브릿지 클래식 정상에 올라 한 해에 2승을 거뒀다.

박지은은 33세 때 갑작스레 은퇴했다. 데뷔 첫해 우승하고도 연습을 많이 해 갈비뼈 부상으로 11개 대회를 쉬는 바람에 신인상도 못 받았다. 몸이 아파도 연습에 매달렸다. 그럴수록 허리가 아팠고 슬럼프가 찾아왔다. 마지막 날 허리 통증이 심해 기권한 적도 많았다. 향수병도 도졌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서 지냈지만 객지생활은 점차 힘들어졌다. 2011년 중대 결심을 했다.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자는 취지로 그해 전남 무안에서 열린 KLPGA투어 시드전을 통과했다. 비록 시드전이었지만 7∼8년 만에 가장 열심히 했고 행여 탈락할까 긴장도 많이 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려 들어갔다가 컨디션이 좋아 욕심을 냈다. KLPGA투어가 개막하기 전이라 LPGA투어 대회에 몇 차례 출전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짐 싸는 게 싫어졌다. 눈물이 나기도 했고 코스에 나가기도 싫어 연습 라운드도 걸렀다. 친하게 지내던 배스 대니얼, 멕 맬런 등 여러 은퇴 선수와 진로를 상담했다. 그의 부모님도 일찍 은퇴할 것을 종용했던 터였다. 그동안 허리가 아파 호텔에서도 침대에서 못 자고, 바닥에서 수건을 깔아놓고 자는 모습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박 위원 곁을 10년 이상 지켜준 지금의 남편과 “무조건 2012년에 결혼하자”고 약속한 상태였다. 박 위원은 “그와 이런 미래에 대한 약속이 없었다면 은퇴는 몇 년 더 빨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은 2012년 숍라이트클래식 때 처음으로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싶다고 밝혔고 1주일 후 웨그먼스 LPGA 대회에서 은퇴했다. LPGA 1세대 선수 중 가장 먼저였다. 이후 김미현, 한희원, 장정, 박세리 순으로 은퇴가 이어졌다.

박 위원이 2000년 캐시아일랜드그린스닷컴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했던 날,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운영하는 삼원가든을 찾은 손님 모두에게 공짜 점심으로 한턱을 냈다. 신문과 방송에 기사까지 나가자 두 번째 우승(2001년 오피스디포) 때에는 ‘공짜 점심’을 먹으려는 손님이 인근 성수대교 남단까지 줄을 서는 바람에 도로가 마비됐다. 주변 상인과 주민들의 민원이 쇄도해 세 번째 우승부터는 ‘반값’ 할인으로 대신했지만, 그래도 수백 명이 줄을 섰다.

박 위원은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께선 지금도 ‘투어를 함께 다녔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말을 하신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