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동(1954∼2014)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학처럼 목이 길고 착한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동안 병원 치료를 받으며 고생하더니 결국 그렇게 떠났다.

인연 따라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각자가 편한 시간에 조문하자고 카톡으로 약속한 후, 먼 길을 달려 친구의 영정 앞에 섰다. 국화에 휩싸인 친구의 얼굴! 우리들한테 ‘왔어?’라며 반길 것 같은데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친구야! 얼마나 힘들었어?’ 애끊는 마음으로 조문한 후 그의 남편과 아들딸에게도 위로의 인사를 하는 순간, 우르르 친구의 여동생들이 나한테 눈물 바람으로 매달린다.

“언니가 과수원 일을 하며 목이 아픈데도 병원에 가지 않고 일에만 열중하다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수술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갑상샘암이 장기로 전이돼 어찌할 수 없어 항암치료를 받았던 사연들을 전해 듣는데 내 정신이 아득하기만 했다.

고인이 된 친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짝꿍이었다. 점심시간이면 각 반마다 옥수숫가루로 만든 빵이 학생 수의 반만큼 배당된다. 그 빵을 면도칼로 반을 자르다 보면 똑같지 않고 크고 작게 나누어진다. 우리는 서로 먼저 작은 것을 차지하려고 했었다. 무언중에 큰 것을 서로 양보하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 모처럼 동창들과 가을 여행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어려움 속에서도 애들이 잘 자라줘 감사하고 과수원을 하며 힘들지만 괜찮다는 친구한테 무지개가 보였다. 그 여행에 참석한 친구들이 38명이었는데 짝지어 자전거 타는 시간, 그와 짝꿍이 돼 깔깔대며 함께 페달을 힘껏 밟았다. 정해진 코너를 돌 때 사진사가 ‘찰칵’ 찍었던 사진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배꽃이 필 때는 굉장히 예쁘지?” “그럼 엄청나지.” 그녀는 그해 봄 배꽃이 활짝 핀 과수원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보여줬었다. 그 사진은 배나무 곁에 바구니와 호미가 놓여 있고 배꽃을 바라보며 감격한 친구의 모습이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배꽃이 환하게 필 때면 그 친구가 그립고 아련하다. 친구는 아버지가 안 계신 집안의 맏딸로서의 책임과 의무, 결혼 후 넉넉지 못한 살림에 자식들 키우며 살았던 삶이 참으로 맛문했으리라.

올해 유난히 곱게 물든 단풍잎 속에서 친구의 얼굴이 또 아른거린다. 다음 생에는 좋은 곳에서 환생해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삶이 이어졌으면 한다.

친구야! 내가 별들을 따고 이슬방울 모아 월계관을 만들어 놓았다가 언제라도 꿈속에서 만나게 된다면 네 머리에 살포시 얹어줄게.

친구 정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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