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성 前 한국교원대 총장·정치학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 때 ‘어떤 기관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그러고는 검찰이 그런 기관인 듯 검찰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받아 여당에서는 ‘검찰의 기소 독점 구조에서 검찰 특권을 해체할 수 있는 조직은 공수처’뿐이라며 공수처 법안의 국회 통과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다. 만일 검찰 권력을 능가하는 공수처가 신설된다면, 대통령은 곧바로 3권을 장악한 절대권력자가 돼 ‘국민 위에 군림’할 것이다. 대통령이 이를 모르고 검찰 개혁을 주장했다면 인지부조화에 빠진 셈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위장 논리를 혁명의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삼는 레닌이즘에 빠진 셈이다.

대통령의 인지부조화 문제는 오래전부터 나타났다. 지난 1분기에도 16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는데도 대통령은 ‘거시적으로 한국 경제가 크게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원자력이 위험하다고 탈원전을 한다면서 외국에 가서는 ‘한국 원전은 40년 동안 사고 한 번 없었다’며 자랑하거나, 올해만 탄도미사일을 10번이나 쐈는데도 유엔총회에서는 ‘북한은 지난해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 단 한 번의 위반 사례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최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2017년 대비 2019년 소득 5분위 배율이 4.73배에서 5.3배로 악화했는데도 ‘우리 경제를 구조적으로 병들게 했던 양극화·불평등의 경제를 사람 중심 경제로 전환해 함께 잘사는 나라로 가는 기반을 구축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인지부조화 문제는 대통령의 무능력으로 치부할 수 있다. 비서진이나 각료들이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인지부조화가 아니라, 숨은 의도를 감추는 위장논리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대통령은 공수처 법안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와 같은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것으로도 설명하는데, 과연 그렇다면 더더욱 석연치 않다.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를 감시하는 기관은 이미 있는데도 아직 임명하지 않았다. 특별감찰관이 그것인데, 결원되면 30일 이내에 임명하도록 특별감찰관법(제8조)에 규정돼 있다. 대통령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고 굳이 공수처를 설치하려는 진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공수처는 법관, 검찰 및 장·차관과 같은 고위공직자의 직권남용, 직무유기 및 공무상 비밀 누설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다. 적폐 청산에서 봤듯이,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는 아무리 깨끗한 공직자라도 얼마든지 잡아넣을 수 있다. 더구나 공무상 비밀 누설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까지 수사할 수 있다. 아직 정부 안(案)이 나오지 않았지만, 여당에서 논의되는 바로는 수사 대상을 국회의원으로까지 넓히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공수처는 행정·입법·사법과 언론까지도 통제할 수 있는 ‘공포수사처’가 될 것이다.

공수처는 검찰보다도 독립성이 약한 대통령의 직할 기관이다. 검찰총장과 달리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직접 바로 임명할 수 있다. 임명추천위원회는 총 7명으로 구성되는데, 2명이 야권 인사지만 나머지 5명은 여권 인사다. 공수처의 검사도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수처가 설립되면 대통령에게 모든 정치권력이 집중되는 것이다. 중국 시진핑(習近平)의 국가감찰위원회나 김정은의 국가안전보위성에 비유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공수처가 자신의 절대 권력기관임을 대통령이 모르고 주장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어법은 유체이탈 화법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말도 충분히 하면 진실이 된다’는 레닌의 혁명 화법인 셈이다. 이쯤 되면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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