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년(韓萬年) 일조각(一潮閣) 발행인은 나를 불러 충고의 말을, 아니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 준 적이 있다.
“고정일 사장! 이 세상을 혈기와 패기로 헤쳐 나가기보다 온고지신 지혜와 성심으로 헤쳐 나가야 해요. 우리네 농기구인 ‘키’를 알고 있지요? 거둔 곡식을 그 키로 까부를 때 쭉정이는 날려 보내고 알곡만 남겨야 하는데, 키 까부르기가 지나치면 알곡까지 몽땅 날아가 버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지요.”
그는 애정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으며 나를 깨우쳐 주었다. 그즈음 젊은 나는 출판을 한답시고 의기충천해 이것저것 호기를 부리며 자만에 차 있던 터라 그의 말은 나에게 충격적으로 울려왔다. 이때가 1973년, 나는 그를 나의 ‘만년선생’이라 부르기로 했다.
키는 곡식을 까불러서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다. 곡식을 알맞은 분량으로 나눠 위아래로 흔드는 것을 ‘까부르다’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경망하게 노는 모양새를 ‘까분다’ 하는 것도 예서 나온 말이리라. 농촌에서 태질과 도리깨질이 끝나면 곡식을 산더미처럼 그러모아 나비질로 까라기와 북데기를 날려 골라낸 알곡을 섬에 담는다. 넉가래에 줄을 매어 가래질하듯 나락을 떠서 멀리 날리면, 일꾼들은 저마다 키를 들고 좌우로 늘어서서 이를 휘둘러 날린다. 이때 무거운 나락은 아래로 떨어지고 가벼운 쭉정이 북데기는 멀리 날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키질을 제대로 하지 않고 무턱대고 까부르다가는 성한 알곡까지 퉁겨 나가기 쉽다. 위아래로 키를 까부르는 틈틈이 좌우로 조금씩 흔들며 키의 허리께를 손으로 살짝살짝 쳐주어야 한다. 잔돌이나 쭉정이가 앞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또, 검불이나 먼지만 있고 흙이나 돌이 섞이지 않았을 때는 키질 방법도 달라지는데, 이때는 바닥에 멍석을 깔고 알곡이 든 키를 높이 올려 비스듬히 기울인다. 그러면 무거운 알곡은 발아래로 떨어져 쌓이고, 가벼운 먼지와 검불은 날려 가게 된다.
무엇보다도 키질은 정성과 기술이 중요하기에 힘만 믿고 까부르는 젊은이들이 오랜 세월 익숙해진 어른들 솜씨를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키는 한낱 농기구지만, 그 키질 방법에서조차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음을 만년선생은 나에게 일깨워 준 것이다.
일조각 창업 30주년이던 1984년, 만년선생은 책과 함께한 인생 30년 기고한 글들을 모아 ‘일업일생(一業一生)’을 펴내며 머리글에 그 심정을 밝히고 있다.
“출판업을 어떤 형태로 끌고 가느냐 하는 것은 경영자의 인생관이랄까 세계관에 따라 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뜻에서 이 책에서는 내 생각이 얼마만큼은 드러나리라 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자기도취라 할까 자기만족의 틀을 못 벗어나리라 생각된다…. 나도 내가 쓴 글들을 한 번쯤 내 손으로 출판해 보고 싶었다. 내 출판사 도서목록 끝에 내 책도 손으로 끼워 넣고 싶었다.”
만년선생은 일업일생의 신념으로 한국학의 개념조차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1960년대에 영리를 초월해 한국학 관련 전문도서와 학술논문집을 간행함으로써 출판을 통한 한국학 개척과 정립에 뿌리와 같은 역할을 자임했다. 그의 이러한 의지는 유진오 ‘헌법해의’, 이기백 ‘한국사신론’을 비롯해 ‘한국사학의 방향’ ‘한국헌법해의’ 등 한국사학 관련 도서 100여 종과 ‘한국사강좌’(전 7권), ‘한국사자료전집’(전 5권), ‘한국사논문선집’(전 6권) 등 한국학 도서 1000여 종을 발행함으로써 빛을 발했다. 한만년의 키 까부르기 지혜는 가슴 설레는 지적 모험인 출판업 삶의 궤적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오늘날 키 까부르기를 함부로 하면서 자신과 나라를 어지럽히는 쭉정이들이 왜 이리도 많은가.
고정일 동서문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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