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불의 세례를 받았을 때 비로소 자기 안에 숨겨진 심미적 언어들을 변화무쌍하게 드러낸다. 변성암이 지열과 압력을 견뎌온 영겁의 행적을 불과 하루 불길로 재현한 것이 테라코타이다. 불이 자아낸 흙의 신비와 아우라는 우리 내면의 심연에 웅크리고 있는 불길한 혹 덩어리까지도 재로 만든다. 김창섭의 흙 작업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떠올리게 한다. ‘회색 신사’가 등장해 소중한 시간을 보이스피싱당해 맨날 시간 없다고 허둥대며 쫓기는 우리. 성(城)으로 상징되는 우리 자아는 그러한 시간의 파고에 놓여 있다.
이렇듯 일그러진 시계 이미지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기계적 시간이 아니라 주체의 의식 속에서 나를 나답게 하는 시간, 즉 카이로스의 시간인 게다. 시간은행의 감언이설에 속아 빼앗긴 우리의 시간을 되찾자. 휴식하고, 사랑하며, 가슴으로 상상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 잠시 게을러도 된다. 이재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