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굿 신화 되살린 실험무대
내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서
국악판타지 공연 ‘붉은 선비(사진)’ 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시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 하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함경도 굿 신화를 오늘의 무대에 되살리며 전통 국악과 창작 음악을 함께 어우러지게 한 것이 새 도전의 핵심이다. 연주와 노래, 춤이 종횡무진 섞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무대에서 와이어까지 활용한 것 등도 실험성이 크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전통 음악을 박제된 틀에서 꺼내어 현대의 관객에게 전하겠다는 국립국악원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의지는 ‘붉은 선비’를 1년에 걸쳐 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일 실제 공연을 보니, 새로운 시도가 워낙 많아 작품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옛 신화와 오늘의 이야기를 연결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은 좋았으나, 그 구조가 튼실하지 못한 탓에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면 매우 독특한 국악 판타지 극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우리 국악에 눈이 밝은 이라면 초연 자체로도 얻어갈 것이 많을 듯 싶다. 창극, 판소리, 민요, 정악에서 연극, 뮤지컬까지 다양한 콘텐츠가 한 작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우리 전통 신화 ‘붉은선비 영산각시’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늘나라에 살던 붉은 선비와 영산 각시가 지상에 내려와 부부로 살다가 대망신(구렁이신)과 대결하는 내용이 큰 줄거리를 이룬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기이한 이야기인데, 신화답게 각 대목에 전통 신앙과 사상을 상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작품은 그 신화를 모태로, 현대의 고교 교사 지홍이 학생들과 함께 현장 학습을 떠났다가 산불을 만나 겪은 이야기를 연결했다. 지홍의 아내 영산이 이승과 저승의 중간계에 있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지홍이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해원(解寃)에 이르는 과정이 펼쳐진다.
10개 마당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까닭에 무대 전환이 빠르다. 각각의 무대마다 다채로운 변화가 시도돼 어지러운 느낌이지만, 그만큼 박진감이 있다. 해원으로 가는 대목(9장)에서의 대사는 힘든 삶을 견뎌야 하는 보통 사람에게 큰 울림을 준다. “많이 아팠구나. 많이 울었구나.” 22일 오후 8시, 23일 오후 3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공연.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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