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자유한국당의 ‘청년 간담회’ 자리에서 참석 대학생들이 비난을 쏟아냈다. 청년들이 꿈과 희망, 도전과 창의를 키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은 점잖았다. 심지어 ‘노땅 정당’이란 비난까지 나왔으니까. 노땅은 연세 많은 분을 낮잡아 이르는 비속어다. 작가 강용준의 1981년 신문 연재소설 ‘천국으로 이르는 길’에서는 늙은이라고 풀이했지만, 그 어원은 분명치 않다. 노당익장(老當益壯)의 ‘노당’이 경음으로 변한 말이 아닌가 짐작해 볼 뿐이다.
젊은이들이 흔히 사용하는 은어 노땅은 ‘꼰대’라는 말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1961년 2월 9일 자 동아일보를 보면 ‘제3의 사회⑤ 완전걸식파’ 편에 꼰대란 말이 나온다. 그들 사회에서는 중년의 걸인을 ‘먹네’, 중년의 여자 걸인은 ‘뭉치’, 영감 걸인은 ‘꼰대’라고 한다. 신문에 소개될 정도라는 건 그보다 훨씬 전부터 꼰대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프랑스어 콩테(Comte·백작)가 일본어 ‘콘테(コンテ)’를 거쳐 우리말로 왔다는 어원설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이완용 등 매국노들이 작위를 받으면서 스스로를 ‘꼰데’라고 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번데기의 남해안 지역 방언인 ‘꼰데기’ 어원설보다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후 친일파들의 행태를 ‘꼰대짓’이라고 했다.
지금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 ‘젊꼰’이란 은어가 유행이다. 원하지도 않는 충고를 하거나 가르치려 들거나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강요하는 젊은 꼰대를 가리킨다. 이웃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로가이(老害)’라는 은어가 통용된다고 한다. 노인공해의 준말이라는데, 그 쓰임은 우리말의 꼰대와 비슷하다.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 섞인 은어는 국경선도, 달력도 없다.
사회관계망에 ‘꼰대 6하원칙’이란 게 떠다닌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순으로 “내가 누군지 알아, 왕년에, 어딜 감히, 뭘 안다고, 어떻게 나한테, 내가 그걸 왜”가 그것이다. 그래, 바로 내 행동 그대로군 하는 생각이 들면 바로 자신이 꼰대란다. 우스개를 넘어 사회의 어르신들을 희화화하는 수준이다. 노소 누구나 꼰대, 노땅 소리를 들을 수는 있다. 하지만 ‘꼰댓짓’ ‘노땅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바보짓, 헛짓, 허튼짓처럼 접미사 ‘-짓’이 붙으면 매우 듣기 거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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