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융희(1927∼2017)

교수님 가신 지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광화문 한 음식점에서 제자들이 소박하게 마련한 88세 미수연에서 “내 100세까지 살 테니 매년 만나자”고 하셔 놓고, 오매불망 그리시던 고향 정주 땅도 못 밟아보시고 90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교수님은 대한민국 환경정책과 지방자치정책의 창시자이시면서 살아생전 90세까지 늘 공부하시던 대학자이셨습니다. 2011년 80세 중반에 사모님 병수발하시면서, 사흘 연속 밤을 새워가시면서 초인적으로 번역한 ‘생존의 조건 : 생명력이 넘쳐 흐르는 태양에너지 사회로’는 지금 이 시점에 더욱 절실한 과제로 다가옵니다.

“비이장목(飛耳長目)” “파도와 싸우며 조류를 타자”, 교수님께서 늘 강조하신 계획가의 역할과 역사인식은 잊을 수 없는 연구자의 지침입니다. “계획가에게 내일은 중요하다. 내일에도 파도는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지혜는 오늘의 파동과 타협하는 것만이 현명한 것은 아니다. 유연한 역사 흐름을 바라보는 예지를 가지고 오늘을 살자”. 교수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최근 아침 뉴스에서 우리나라 여성관리자 비율이 18%로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교수님께서는 벌써 이삼십 년 전부터 여성들의 능력을 인정해 주시고 기회를 많이 주신 분이셨습니다. 저도 교수님 덕분에 국토환경정책 분야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리쓰메이칸대의 미야모토 겐이치(宮本憲一) 교수님께 특별히 소개를 해주시고, 칭찬을 과분하게 해주셔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교수님 생신은 8월 4일로 제 생일과 똑같아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저의 스승이십니다. 몇 회 생신 때인가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서 교수님 노래를 청해 들은 적이 있는데, “매일 연구만 하다가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보았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노래방을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인생이 더욱 재미있었을 텐데” 하시면서 ‘보리밭 샛길’을 2절까지 아련하고 멋지게 부르시던 인간적인 모습도 그립습니다. 교수님 돌아가신 후 교수님께서 초대 원장을 지내신 국토연구원에 가족분들이 기증하신 배롱나무도 뿌리를 잘 내려, 올여름 내내 하얀 꽃이 피었답니다.

제자 김선희 국토연구원 국토환경·

자원연구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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