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 못 받을 줄 알았는데….”

2019년 영화계를 결산하는 ‘말말말’이 있다면, 이 한마디에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지난 21일 ‘제40회 청룡영화상’이 열렸죠. 그리고 영화 ‘기생충’의 다관왕 등극은 명약관화였습니다.

이날 시상식의 백미는 수상소감이었는데요. 촬영조명상을 받은 영화 ‘스윙키즈’ 관계자가 “‘기생충’이 받을 줄 알았는데…”라며 시작한 수상소감을 남우주연·조연상을 각각 받은 정우성과 조우진이 똑같이 읊조렸죠. 하지만 여우주연상 시상 때 반전이 일어났는데요. 조여정이 눈시울을 붉히며 “이 부문(여우주연상)은 진짜 ‘기생충’이 받을 줄 몰랐다”고 말해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기생충’ 속 대사처럼 “베리 나이스(very nice)”한 연기를 보인, 아직 30대지만 연기 경력이 20년이 넘은 이 배우를 처음 발견한 건 지난 2005년이었습니다. 당시 한 타월 회사의 모델이었는데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의 경기 중간 이 광고가 자주 삽입됐죠. 이 광고가 나오면 승리한다는 징크스 덕에 ‘승리의 여신’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조여정의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살펴보면 배우로서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배우들이 노출 연기를 꺼리는 데 반해 조여정은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방자전’과 ‘후궁’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입지를 다졌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방자전’을 검색하면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댓글이 “난 영화를 아름답게 봤는데, 왜 이렇게들 노출신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라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죠.

조여정은 이후로도 작품이나 배역의 크기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주연을 병행하며 KBS 4부작 드라마 ‘베이비시터’에도 기꺼이 출연하고, ‘인간중독’으로는 2개의 여우 ‘조연’상을 수상했죠. 결과적으로 ‘인간중독’을 인상 깊게 본 봉준호 감독이 그에게 ‘기생충’ 시나리오를 건넨 것이니, 자리의 크기보다는 의미에 방점을 찍고 최선의 연기를 보인 조여정의 혜안이 빛나는 대목입니다.

C는 탄소의 원소기호입니다. 흑연과 다이아몬드의 원소기호도 C죠. 같은 재료를 놓고도 누가 얼마나 오랜 기간 공을 들이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양지차라는 의미죠. 봉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여정은 아마 엄청나게 깊은 다이아몬드 광산인데 아직 아무도 모르는 듯해서 그 일부라도 채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캐스팅했다.”

그런 조여정이 다음 달 신작 ‘99억의 여자’로 다시 대중 앞에 서는데요. 우연히 99억 원을 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1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 연기를 한 번 기대해 봅니다.
안진용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