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

우리나라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권은 만 19세부터 주어진다. 우리나라의 선거 연령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높은 편에 속한다. 예를 들어 미국과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대다수 유럽 국가의 선거 연령은 만 18세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의 선거연령이 만 18세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는, 보통·평등·비밀·직접 선거를 원칙으로 한다. 선거에 이런 원칙을 두는 것은, 선거에서 모든 유권자는 평등하게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 아래 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선거 연령을 논할 때, 독자적인 판단으로 선거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언제부터 조성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현행대로라면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연령대부터 선거할 수 있다.

반면, 만 18세로 낮출 경우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도 선거권을 주게 된다. 일각에서는 고교 3학년이나 대학 1학년이 무슨 큰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차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 차이의 유무는 우리나라 고교의 교육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 고교 교육은 사고력을 키우는 데 치중하기보다는,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의 말대로 대학입시에서 정시를 확대할 경우, 고교 교육의 초점은 수능에서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더욱 맞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럽의 교육 환경은 다르다. 유럽 국가들의 대입 시험, 예를 들면 독일의 아비투어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우리 수능처럼 객관식이 주를 이루는 시험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를 논리적으로 서술해야 하는 시험이다. 필자가 유학한 독일만 보더라도 우리의 인문계 중고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에서는 토론 수업이 주를 이룬다. 토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주입식 교육을 받은 학생들보다 독자적 판단이나 사고를 함에 있어, 외부의 영향력을 덜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즉, 우리나라 고교생들의 지적 능력이나 지적 수준이 유럽 고교생들보다 월등할 수 있지만, 주입식 위주의 정답 중심 교육 때문에 독자적 사고를 함에 있어 외부 영향력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적 판단을 하는 데 있어 외부의 영향력이 없다면 어떨까? 당연히 고교생들에게도 선거권을 줘야 한다. 하지만 최근에도 봤듯이, 교육 현장에서 특정 이념 성향에 대한 ‘강조’가 ‘간헐적’이라도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고교생들의 독자적 사고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부적 요소는 상존한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특정 이념 성향의 ‘강조’에 반발해서, 반대의 이념 성향을 ‘강조’하는 현상까지 더해지면 우리의 교육 현장은 그야말로 진영 논리가 판치는 장소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환경이 초래되면 이는 단순히 선거 연령 하향 조정이라는 단기적·정치적 문제를 넘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선거 연령을 낮춘다는 것은 일단 교육 과정과 대학 입시부터 점차 바꾼 뒤에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똑똑함에 걸맞은 교육과정이 개발되고, 이에 입각한 대입 제도를 갖게 된다면 선거 연령 하향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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