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759조 원‘스트리밍 전쟁’ 왜

넷플릭스 독주에 디즈니·애플 등 속속 가세…케이블·지상파 등 힘잃어
美 시청자 평균 3.6개 가입… 韓 미디어시장‘생존’ 위해선 변화에 대응해야


“디즈니 플러스는 구독해야지. 우리 집에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있어.” “넷플릭스를 끊을 수는 없을 것 같아. 블랙 미러를 보는 즐거움은 대단해.” 미국 시청자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최근 애플이 ‘애플TV 플러스’를 개국한 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디즈니가 ‘디즈니 플러스’를 개국하면서 TV 콘텐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가입자 1억3000만 명을 보유한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에 디즈니가 도전장을 내밀면서 판이 커졌다. 디즈니 플러스를 보느냐 넷플릭스를 끊느냐 고민하는 시청자가 많다. 디즈니 플러스는 개국 하루 만에 북미(미국, 캐나다)에서만 무려 1000만 명이 가입하는 경쟁력을 과시했다. 스트리밍 플랫폼 구축 등 콘텐츠 투자 규모는 지난 5년간 759조 원(6500억 달러)에 이른다. 미디어 빅뱅을 넘어선 ‘메가뱅’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759조 원 투입된 美 ‘스트리밍 전쟁’

현재 ‘넷플릭스 대 디즈니’ 구도는 미국 미디어뿐 아니라 전체 산업을 강타하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모바일 운영체제(OS) 주도권을 둘러싸고 전개된 ‘애플 아이폰 vs 구글 안드로이드’ 이후 최대 라이벌로 꼽힐 정도다. 디즈니 플러스는 호주, 뉴질랜드,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하면 2024년까지 6000만∼9000만 명의 가입자 확보는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오는 2020년 4월에 NBC 유니버설의 스트리밍 서비스 ‘피콕’, 5월 AT&T의 ‘HBO 맥스’가 새롭게 개국한다.

한마디로 스트리밍 전쟁이 벌어졌다. 스트리밍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콘텐츠 투자 및 테크 구축 규모는 천문학적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에서 지난 5년간 스트리밍 플랫폼 구축과 마케팅 그리고 콘텐츠 투자 규모가 무려 759조 원에 달한다고 계산했다. 마치 지난 1860년대 철도 건설, 1940년대 자동차 공장 건설 붐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UBS 분석에 따르면 올해만 해도 16개 메이저 콘텐츠 제작사가 1000억 달러(117조6000억 원)가 넘는 현금이 콘텐츠에 투자됐는데 그 규모도 미 석유산업 투자액수와 맞먹는다. 신작 영화 드라마 제작 편수도 496건에 달한다. 넷플릭스의 올해 콘텐츠 투자 규모(약 150억 달러)는 터키의 1년 국방비 지출액인 182억 달러(2017년 기준)에 육박하며 1∼2년 내 캐나다(206억 달러)나 호주(275억 달러)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메가뱅 이후 ‘1강 3중’ 구도 형성 전망

미국에서는 기존 방송 체제(지상파, 케이블, IPTV, 위성)가 몰락하고 있다. 대신 인공지능(AI) 기술과 탄탄한 시나리오를 갖춘 콘텐츠가 결합한 ‘테크 & 미디어’ 중심으로 재편됐다. 방송통신과 AI가 결합한 미디어 대융합(Great Convergence)이 벌어지고 있으며 곧 빅뱅을 넘는 규모의 메가뱅(Mega Bang)이 전개될 예정이다.

메가뱅 이후엔 승자와 패자가 극명히 갈린다. 월스트리트저널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청자들은 평균 3.6개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월 44달러까지는 지불할 용의가 있지만, 그 이상은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봤다. 미국 소비자의 47%는 구독 서비스가 증가함에 따라 피로감을 호소하는 ‘구독 피로’란 신조어가 나왔을 정도다.

메가뱅이 벌어진 3∼4년 뒤에는 몇 개만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선발 사업자 우위를 갖춘 넷플릭스가 ‘1강’을 유지하는 가운데 픽사·마블·내셔널지오그래픽·스타워즈 등 인기 있는 콘텐츠 저작권을 소유한 디즈니와 아이폰 생태계가 강점인 애플, 그리고 ‘왕좌의 게임’ 등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HBO 맥스가 ‘3중’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 프라임’ 속 서비스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마존과 NBC유니버설 계열의 피콕은 ‘2약’이 될 것이다. CBS 바이어컴이나 소니픽쳐스 등 중소업체로 전락한 스튜디오들은 수년 내 인수·합병, 이합집산이 불가피하다.

미디어 산업의 중심도 기존 지상파 방송사가 위치한 뉴욕, 애틀랜타에서 정보기술(IT) 콘텐츠 스튜디오가 집중된 ‘버뱅크밸리’(LA버뱅크 + 실리콘밸리)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LA도 영화 촬영의 중심이 됐던 ‘베벌리’가 아닌 테크와 결합한 ‘B밸리’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미디어 메가뱅 촉발 3가지 이유

미국에서 이렇게 천문학적 민간 투자가 이뤄지고 빅뱅을 넘어 ‘메가뱅’이 펼쳐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용자의 시청 습관이 완전히 변했다. 시청자들이 TV를 거실에서 안 보고 스마트폰, PC, 태블릿으로 스크린을 이동하면서 시청한다. 또 소위 ‘빈지 워칭’이라고 불리는 시리즈 몰아보기가 정착됐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리모컨을 찾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검색하고 꺼내보며 시청자가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드라마 추천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 됐다. 한국에서 이미 대세가 된 ‘유튜브’ 붐에 이어 넷플릭스의 폭발적 가입자 증가세는 국내 사업자에 비해 유튜브, 넷플릭스가 달라진 시청자 습관을 반영할 수 있는 기술을 갖췄기 때문이다.

둘째, 미디어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 광고에서 디지털 구독으로 이동했다. 미디어는 전통적으로 네트워크(케이블TV, IPTV, 위성방송 등)와 셋톱박스가 결합한 상품의 패키지 판매에 의존하고 광고료를 수익의 원천으로 삼았으나 광고와 시청 데이터가 구글과 페이스북에 의해 이중독점되면서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따라서 소비자에게 D2C(Direct to Consumer) 식으로 직접 구독료를 받는 모델로 변신해야 했다. 디즈니 플러스는 이 같은 비즈니스 모델 변화에 대한 96년 전통 디즈니의 답이다.

셋째는 5세대(G) 이동통신 때문이다. 5G는 전산업에 걸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지금까지 새로운 통신기술인 5G의 뚜렷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4K HD 모바일 스트리밍 콘텐츠는 이용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미 1위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은 5G를 포함한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에게 1년간 디즈니 플러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 벌어진 빅뱅을 넘은 ‘미디어 메가뱅’은 한국 미디어 산업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변화를 읽어 재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이 국내 시장을 공략하기 때문에 한국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이들을 적으로 돌려세우기보다 공룡의 등을 타고 글로벌로 날아다니는 호랑이가 되는 게 현명할 것이다.

실리콘밸리 ‘더밀크’ 대표


■ 세줄 요약

스트리밍 전쟁 : 미디어 ‘메가뱅’ 시대 도래. 지난 5년간 미국 내 스트리밍 플랫폼 구축과 마케팅, 콘텐츠 투자 규모가 759조 원.

미디어 대융합 : 방송통신과 인공지능(AI)이 결합한 대융합으로 미디어 메가뱅 전개 중.

메가뱅 촉발 이유 : 이용자의 시청 습관이 완전히 변했고, 미디어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 광고에서 디지털 구독으로 이동했으며, 5세대(G) 이동통신이 출현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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