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새 씨의 서울예고 졸업 사진. 왼쪽부터 아버지 금수현, 금난새, 임원식 교장, 어머니. 다산책방
금난새 씨의 서울예고 졸업 사진. 왼쪽부터 아버지 금수현, 금난새, 임원식 교장, 어머니. 다산책방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 금수현·금난새 지음/다산책방

작곡가 금수현(1919~1992)은 1945년 해방 직후에 얻은 큰아들 이름을 ‘금뿌리’라고 지었다. 순 한글 이름이었다. 그런데 관공서에서 한자(漢字) 이름밖에 받아줄 수 없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자가 있는 이름으로 바꿨다. 이후 신문 기고 등을 통해 관련 법 개정 운동을 이끌었고, 마침내 둘째 아들 이름은 순 한글인 ‘난새’로 등록할 수 있었다. 금난새는, 그러니까 한글로 등록된 최초의 이름이다.

지휘자로 유명한 금난새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덧 제가 아버지 돌아가셨을 즈음의 나이가 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근래 들어 아버지가 더욱 그립습니다.”

이 책은 금난새가 올해가 부친이 세상에 온 지 100년이 되는 해라는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그의 부친 금수현은 경남 통영여고 교장 등을 지내며 교육에 헌신했고, 문교부 편수관으로 일하며 우리 음악 용어를 한글로 바꾸는 데 앞장섰다. ‘그네’의 작곡가로서 한국작곡가협회장 등을 맡아 한국 클래식 발전에 기여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금수현은 1960년대에 일간지를 통해 칼럼을 연재했고, 뒤에 책으로 묶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담았다.

“아버지의 그 글들을 책으로 다시 만들어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너무 옛이야기여서 요즘 젊은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글을 빼니 100편에서 25편이 모자라더군요. 그래서 제가 25편을 써서 채워 넣었습니다, 하하.”

금난새는 27일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공저자가 됐다. 그러니까 이 책은 금난새가 지휘해서 만든 사부곡(思父曲)인 셈이다.

그는 이날 한·체코 미래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프라하에 있다고 했다. 장거리 전화를 통해 그는 자신에게 정신적 유산을 준 아버지를 오래 자랑하고 싶어 했다. 그 유산은 이번 책에 잘 나와 있다. 평소 말수가 적었으나 술을 마셔 알싸한 취기가 오를 때면 자식들에게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던 아버지였다. 유머와 위트로 유쾌히 살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챙기던 모습이 자식의 가슴에 남아 있다. 예술가의 길을 가면서도 직업을 갖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모습도 고맙고 그립게 기억한다.

“젊었을 때는 제 나름대로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나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제가 아버지를 점점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꾸 글도 쓰고 싶고, 노래도 부르고 싶고, 말도 많아지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들이 늘어납니다. 어쩌겠습니까? 이게 천성인 것을요.” 272쪽, 1만60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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