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설리와 구하라가 잇달아 숨진 후에 엉뚱하게 백범 김구의 문화 국가론이 떠올랐다. 알려진 것처럼, 김구는 ‘백범일지’를 통해 문화 국가론을 주창했다. 그는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했다.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그가 왜 이토록 문화를 갈망했을까. 그 까닭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 나와 있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백범에게 문화는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정치적 이상주의에 이견이 있는 사람도 문화 국가론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백범이 70여 년 전에 꿈꿨던 문화 국가에 얼마나 다가가 있을까.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는’ 문화를 얼마나 이뤄냈을까.
우리는 근년에 아이돌 한류 스타들을 내세워 전 세계에 문화의 힘을 과시했다. 이른바 선진 문화를 수입하는 데 바빴던 처지로서는 이 역전 상황이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돌 스타 시스템 이면에 수많은 문제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류 스타였던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은 그 문제의 일각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들의 죽음은 개인이 불행을 견디지 못한 탓도 있겠으나, 사회적 타살의 징후가 뚜렷하다. 잔혹한 악플러들에 의해 희생됐다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
그들이 숨진 후에 언론을 통해 이런저런 대책들이 제기됐다. 사후약방문이긴 하지만, 이런 일이 또 일어나는 것을 막자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연예 매니지먼트 시스템 보강, 우울증 환자 구조 체계 강화, 연예뉴스 댓글 폐지 혹은 제한 등이 그것이다. 각 영역 관계자들은 여의치 않다며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그 속내는 대개 자기 조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대중문화 최전선에서 잔인한 악플러에게 고통받는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는 없다. “연예인으로 돈과 명예를 얻는다면, 이 정도 비난은 받아야 한다”며 인간으로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험담을 해댄 악플러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잔인해졌을까. 그 원인은 복합적일 것이다. 누구는 물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박탈감이 큰 탓이라고 한다. 또 누구는 조국 사태에서 보듯 사회 지도층이 겉으론 공정을 내세우며 제 잇속만 챙기는 데서 분노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 세력이 표를 얻기 위해 사람들을 패거리로 나누고, 익명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의 뒷배로 자리하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미래 세대에게 ‘경우’, 즉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지 않는 탓도 크지 않을까 싶다. 기성세대 스스로 약육강식 논리에 절어 있어서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 국가 꿈을 지니고 있는 공동체다. 무고한 젊은 목숨들이 죽어 나갈 때, 이 기막힌 일에 대해 탄식하며 성찰하는 문화가 있어야 그 꿈을 꿀 자격이 있다. 한류 스타였던 두 젊은이의 희생에 빚을 졌다는 절실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열심히 살 테니 조금만 예쁘게 봐 달라고 호소했던 청춘을 ‘칼보다 더 날카로운 말의 상처’로부터 구하지 못한 빚. 이 빚을 빛으로 갚아야 하는 숙제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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