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동촌중학교 허경호 교사
5살때 시력잃어 볼 순 없지만
기타 연주 후 학생들과 교감
마음맞는 아이들과 밴드 결성
점심시간마다 어학실서 연습
교내축제 통해 성공적 무대
“사회봉사차원 공연도 준비”
대구 동구 방촌동 동촌중학교에는 ‘두 얼굴의 교실’이 존재했었다. 영어 회화, 듣기 수업이 진행되는 어학실이 바로 그 문제의 장소다. 기타, 드럼, 젬베, 탬버린이 널브러진 공간. 얼핏 보면 음악실로 착각하기 일쑤인 이곳에서는 오전 내내 원어민 발음이 울려 퍼진 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삼삼오오 모여든 학생들로 또다시 시끌벅적해진다. 그러고는 다들 악기를 집어 든 뒤 저마다의 연주에 심취한다. 소음으로 꽉 찬 공간에 노랫가락이 얹어지면 이내 하모니가 연출된다. 동촌중 밴드부는 지난 9월 공식 출범했다. 지금은 어학실 뒤편 별도의 연습실에서 합주가 진행된다. 사용 후에는 반드시 정리정돈을 하라는 주의사항도 적혀 있다. 합주단의 공식 이름은 ‘대일 밴드’다. 아이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아물게 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허경호(39) 씨는 2년 전부터 이 어학실에서 영어를 가르쳐온 교사다. 2006년 기간제로 교편을 잡았고, 2017년 정식 발령을 받아 이듬해 3월 동촌중에 부임했다. 한 달쯤 지난 뒤부터 점심시간이면 아이들 발길이 잦아졌다고 한다. 교보재로 쓰려고 가져다 놓은 기타가 밴드부 창단의 발단이 됐다.
허 씨는 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날 우연히 한 학생이 기타 연주를 해달라기에 맛보기로 보여줬던 게 소문이 퍼졌다”면서 “젬베, 탬버린 등을 추가로 들여놨더니 어느덧 열댓 명이 모였고, ‘칠 수 있는 사람은 연주해보라’고 했더니 점심시간마다 어학실을 찾아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허 씨는 “그렇게 동촌중 밴드부가 탄생했다”면서 “이제는 정식 동아리의 지도교사이자 밴드부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대일 밴드의 ‘위대한 탄생’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다던 갓 부임한 교사의 열정 넘치는 포부를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물론 있었다. 누구보다 간절히 학생들과 음악으로 소통하고 싶었던 허 씨도 마음은 앞섰지만, 행동으로 나서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학교 차원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더라면 밴드부 창단은 물거품이 됐을 터였다. 지난 9월 부임한 김선희 동촌중 교장은 “‘자주, 자율, 협동’이라는 교훈에 합주만 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되레 허 씨와 학생들을 격려했고, 예산으로 드럼까지 지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보다 대일 밴드의 광(狂) 팬이 됐다. 어느 순간 연습실에 찾아와 연주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박수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허 씨도 무대 위 공연을 꿈꿔왔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취미 삼아 기타를 쳤고 헤비메탈, 록 장르의 음반을 수집하며 사춘기를 보냈다. 허 씨는 음악이 없었다면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대학 때는 전문적으로 악기 다루는 법을 배웠다. 다니던 교회 밴드부에서 직접 공연도 수차례 했다. 허 씨에게 음악은 최대의 무기이자 소통 도구다. 허 씨는 5살 때 시력을 잃었다. 태생기 때 시신경이 잘못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라면서 전해 들었다고 한다. 전맹(全盲). 허 씨는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애인 교사로서 심리적 부담감도 많이 느꼈다. 다른 선생님들이 공통으로 겪는 업무 적응뿐만 아니라 ‘자칫 좋지 못한 인식을 심어주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날이 다반사였다. 그랬던 허 씨를 위로해준 건 다름 아닌 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생활에 관한 이야기, 자신의 고충을 멜로디에 녹여내고 있다. 8명의 밴드부원은 최근 학교 축제인 ‘동호제’에서 성황리에 첫 공연을 마쳤다. 합주는 학생들의 진로 결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몇몇은 대학에서 피아노, 기타, 드럼을 전공하고 싶다고 한다.
대일 밴드는 학교를 벗어나 사회봉사 차원의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허 씨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진 않는다. 그러나 여력이 닿는 데까지 자신의 재능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사재를 털어 음향장비도 설치했다. 허 씨는 “보이지 않아도 마음의 문을 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그것이 음악, 합주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훈 기자 powerkimsh@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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