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씨는 아들의 희생에 대해 “한열이는 대학에 가기 전까지 광주에서 그 사달(5·18민주화운동)이 났다는 것을 몰랐다가 대학에 가서 알게 됐다”며 “광주 사람이면서도 광주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몰랐었다는 부채감 때문에 계속 시위에 나가 앞에 섰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나는 부모니까 한열이에게 ‘남자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건 맞는다’ ‘시위에 나가도 좋으니 맨 앞에만 서지 마라’고 했지만 이를 말릴 수 있었겠느냐”며 “(홍콩 학생들이) 단 한 명도 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이한열(사망 당시 21세) 열사는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7년 6월 9일 ‘6·10대회(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을 뒷머리에 맞고 쓰러졌다.이 사건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돼 그해 6월 29일 대통령직선제 개헌의 초석이 됐다.
김수현 기자 sal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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