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경 경제산업부 차장

우리나라는 연구·개발(R&D)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투여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지출 비율을 보면 이스라엘과 함께 부동의 투톱을 달린다. 장래를 위해 경제 규모에 비해 R&D에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은 극히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과는 투자한 만큼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기초과학은 논외로 하더라도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 스타트업 분야에서 전 세계를 주름잡는 한국 스타트업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적은 것도 아니다. 지금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너무 강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의 창조경제 정책 이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환경이 크게 개선됐고 이러한 정책이 이번 정부에서 계승되고 있는 것도 맞는다. 그런데 이처럼 R&D에도 신경 쓰고 투자 환경도 훨씬 개선시켰는데 왜 좋은 스타트업이 나오지 못하는가.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이에 대해 “시장 규모와 정부 규제 두 가지 원인 때문에 우리 스타트업 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장 규모는 스타트업 산업 육성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시장조사회사 CB인사이트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 되는 스타트업)은 총 419개이며 이 가운데 약 80%가 미국과 중국 기업인 점만 봐도 시장 규모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시장 규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부 규제다. 시장 규모가 미국, 중국처럼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국과의 유대인 커넥션을 통해 스타트업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스라엘처럼 무적의 ‘치트키’를 갖고 있지도 않은 우리가 스타트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과감하게 정부 규제를 푸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 처방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규제 개혁에 대한 정부 의지는 높지만, 그저 의지만 높을 뿐이다. 반대가 있을 경우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추진력이 극히 부족하고 조금이라도 욕 얻어먹을 것 같으면 손을 놓기 일쑤다. 금융산업은 그 특성상 규제 정도가 다른 산업에 비해 강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나라 금융 규제 정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높아도 한참 높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핀테크(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 결합 서비스) 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다. 호주의 핀테크 창업투자회사 H2 벤처스와 미국의 회계 컨설팅 회사 KPMG가 선정해 발표한 2019년 글로벌 100대 핀테크 기업에 따르면 한국은 단 2개의 기업만 올려놓고 있을 뿐이다.

정부로선 억울해할 수도 있다. 개·망·신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보호법) 처리 지연은 야당 탓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좋다. 그러면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일 때 개인정보 활용 방안에 대해 죽기 살기로 반대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로머는 내생적 성장이론을 통해 기술은 경제주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이며 이 기술을 잘 개발하면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외생변수로 여겨지던 기술도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규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 남 탓 할 것 없다. 우리의 미래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의해 결정될 뿐인데 한참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유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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