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뒤틀며 광속으로 퍼져
그 미약한 떨림 포착하기 위해
과학자들 50년 매달려서 성공
포착 자체가 새로운 감각 창조
14억 년 전의 지구에선 특별히 기억에 남을 일이 없었다. 지구의 역사를 살필 때, 대략 8억 년에서 18억 년 전 사이 시기를 ‘지루했던 십억 년(boring billion)’이라고 부른다. 지구 탄생 초창기처럼 격렬한 지각 변동이나 기후 변화가 있던 것도 아니고, 훗날 ‘캄브리아기 대폭발’처럼 다양한 생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의 중세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무렴 그렇다고 의미 없는 시기가 있으랴. 먼저 지구의 겉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콜롬비아라 불리는 거대한 초대륙이 수억 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작은 대륙으로 조각났다. 생명체 관점에서는 진핵 세포가 처음 생겨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곧이어 최초의 유성생식도 등장하려던 참이다.
같은 시기 남반구 하늘 너머 우주 바깥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마젤란 성운 방면으로, 하지만 그보다 더 먼 곳 어디에선가, 가히 우주적 스케일의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지구로부터 14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각각 태양 질량의 36배와 29배에 달하는 두 블랙홀이 서로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곧 싸움이라도 붙을 맹수 두 마리처럼, 서로를 빙글빙글 맴돌며 거리를 좁혀갔다. 두 블랙홀의 만남은 격렬했고, 불과 몇 분의 1초 만에 하나로 합쳐졌다. 이런 거대 질량들의 상호작용은 시공간마저 비틀고 흔들어 댄다. 그 여파로 생겨난 시공간의 떨림은, 마치 연못 한가운데 돌을 던져 생겨난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온 우주를 향해 빛의 속도로.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론을 통해 예측한 중력파다.
14억 년 전 시공간의 생채기로 인해 생겨난 중력파는 서기 2015년이 돼서야 지구를 지나친다. 오랜 시간 먼 길을 온 만큼 그 떨림은 희미할 대로 희미해져 있었다. 이 작은 신호를 포착하려고 과학자들이 지난 반백 년을 매달려 거대한 장치를 만들었다. 길이 4㎞에 달하는 빛의 통로를 두 개 만들어 서로 직각으로 놓은 뒤, 양쪽 통로 끝에 40㎏짜리 거울을 매달아 뒀다. 중력파가 이 장치를 통과할 때 각각의 통로 길이는 서로 다르게 늘어나고 줄어들고를 반복하게 된다. 양쪽 거울을 향해 쏘아준 빛은 그만큼 움직이는 거리가 달라지고, 출발지점으로 다시 모였을 때 빛의 모양새가 바뀌는 것을 통해 중력파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다. 중력파가 이 거대한 장치에 만든 거리 변화는 1㎜도 아니고, 1나노미터도 아니었다. 원자의 크기보다도 무려 1억 배 작은 변화였다.
사람의 감각은 빛과 물질을 향해 열려 있다. 우리는 시공간의 떨림을 봤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중력파 검출기는 지구에서 제일 민감한 귀와 같다. 길옆으로 자전거가 지나갈 때 생기는 땅의 흔들림이나 수백 ㎞ 떨어진 곳의 날씨 변화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마침 2015년 중력파의 떨림 주기 역시 인간이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영역과 겹친다. 하지만, 소리는 공간을 채운 물질의 떨림이지 시공간 자체의 떨림은 아니다. 중력파가 빛의 속도로 전파되고, 이를 탐지하는 데 빛을 사용했으니, 봤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 역시 비유일 뿐. 어쩌면, 시공간의 떨림을 감지함으로써 공감각을 과학적으로 실현했다거나, 새로운 감각을 창조한 셈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지 싶다.
중력파는 우주와 함께 늘 존재했다. 14억 년 걸려 우리에게 도달했던 중력파는 벌써 지구로부터 40조 ㎞ 떨어진 곳까지 멀어져 갔다. 어쩌면 인류가 등장하기도 전에 꼭 같은 중력파를 먼저 감지한 존재가 우주 어디엔가 있을지 모른다. 또 어쩌면 인류가 모두 사라진 뒤에 생겨난 외계문명에서 같은 신호를 발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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