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서기관으로 승진했는데 동료·선후배 공무원들이 기업과 학교로 떠나더군요. ‘나도 나가야 하나?’ 고민이 됐습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저서 ‘한국의 제조업은 미래가 두렵다’를 쓰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때가 한창 정보기술(IT) 혁명이 일어나고, ‘제조업은 더 이상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할 때였지요.”

퇴직을 염두에 두던 성 장관에게 우연히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일본 경제산업성으로의 파견이었다. 그는 “제조업 강국인 일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목격했고,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며 “제조업이 고인 물이 아니라 IT나 서비스와 융합하며 새롭게 진화·발전한다는 게 골자인데, 지금도 제조업에 대해서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성 장관은 19년이나 더 근무하며 장관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산업부는 최근 ‘조직의 허리’ 격인 유능한 과장급 간부가 민간으로 대거 이탈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2000년 초반 내 주변 공무원들이 이직에 나섰던 것처럼, 지금 시대가 또 한 번 공무원의 역할과 상황에 대해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있는 것 같다”며 “다만, 민간·공공 영역을 이분법으로 나눌 필요는 없고, 민간과 공공의 경험이 공유돼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산업부 3대 수재로 불리고 있는 성 장관은 공직을 택한 이유에 대해 “솔직히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대학 시절 경제사상사를 가르쳐주신 임원택 교수님 수업을 듣고는 ‘족탈불급(足脫不及·맨발로 뛰어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구나 싶었다”며 “공적인 보람을 느끼고 싶어 공무원이 됐다”고 말했다.

성 장관은 소개팅으로 만난 아내와 1남 1녀를 가족으로 두고 있다. 그는 약학을 전공하는 큰아들, 커뮤니케이션·불문학을 전공하는 딸에게 “비약(飛躍·나는 듯이 높이 뛰어오름)보다는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해준다고 말했다. 퇴임 후 국회의원 총선거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꼈다. “그동안 말한 것과 같은 입장(출마에 관심 없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963년 대전 출생 △대전 대성고 △서울대 경제학과·행정대학원 정책학 석사·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32회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정책과장·중견기업정책관 △주제네바대표부 공사참사관 △중소기업청 경영판로국장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대변인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특허청장 △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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