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게 항상 큰 언덕이셨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거나 지치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할 때마다 기대고 쉬며 힘을 재충전하는 큰 품이었다.
지난 11월 12일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사무실에서 들었다.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 심장측정기 등 온갖 기계를 몸에 부착하고 힘겹게 숨을 쉬고 계셨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자책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이 세상과의 끈을 쉽게 놓지는 않을 거란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진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제일 후회되고 뼈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3개월 전 어느 일요일 아버지와 어머니의 식사를 챙기러 친정에 갔다. 그때도 아버지는 당신의 몸이 점점 쇠약해지고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아버지는 생전 처음 딸인 나에게 부탁을 했는데 나는 그 부탁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출근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다가오는 죽음을 의식하고 나에게 밤새 자신의 상태를 돌봐달라고 했지만, 그 당시 나는 그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그날 따라 예전과 다른 말씀과 행동 때문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그 일 이후 며칠 뒤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기적이고 못난 나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어머니 걱정에 당신의 건강을 유난히 더 챙겼다.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치매를 앓으며 누워계신다. 거동도 못 하고 웬만한 일은 다 잊고 사시는데 아버지와 자식들만 온전히 기억한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함께 고생하며 집안을 일으킨 어머니가 늘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아픈 어머니를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유난히도 아버지는 건강을 챙겼지만, 세월은 막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직 아버지의 죽음을 알지 못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 치매 때문이다. 아직은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지금도 병원에, 친정집에 계시는 것 같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늘 헛헛하고 허전하다. 가슴에 휑한 바람이 부는 것만 같다. 요즘은 아버지가 계시는 산소에 가며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는다. 생전에 좋아하시던 사탕, 커피를 드리며 혼잣말이라도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얘기도 드리며 허한 마음을 다독인다.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 걱정 모두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못난 딸이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다는 것 이제 말씀드려요. 정말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다섯째 딸 이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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